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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노염화
제 목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광수생각' 그리고 '조선일보 생각'
'광수 생각' 그리고 '조선일보 생각'

노 염 화(문화 비평가)


스포츠면과 문화면, 외딴 방 혹은 휴전지대

신문은 하나의 유기체다. 하나의 논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하나의 편집의도에 따라 전체 지면이 구성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가진 언론으로서의 문제점은 단지 정치·사회면에서만 논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면 같은 곳에서도 문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내부의 문제를 찾기 힘들다면, 그 부분이 전체 속에서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차차 살펴보겠지만 이 두 지면은 젊은 세대를 흡입하기 위해서 전체 논조와 관계없는 무색의 논조로 『조선일보』의 극우적인 색채를 흐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 『조선일보』가 스포츠를 포함해서 문화를 바라보는 전략은 이런 말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극점을 달했던 1943년에 이즈카 도모이치로라는 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무단(無斷)에 대칭되는 의미로 문화라는 것을 관념한다. 무력을 가지고 일도양단으로 민(民)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나 교육 예능 등의 작용을 빌려서 민이 스스로 감화하고 기꺼이 승복하도록 하는 것을 문화라고 한다.

여기서는 『조선일보』문화면의 무채색 전략이 투영된 대표적인 예로 만화 「광수생각」을 들춰보고, 이와 함께 『조선일보』가 꾸준히 펼쳐온, 상업성을 위한 언론윤리 파괴 역시 찾아보도록 하겠다. 자, 스포츠면부터 살펴보자.

『조선일보』 스포츠면에도 음모는 있다.

선정성과 상업성을 위해서 언론으로서의 자기성찰과 일관성을 과감히 파괴해버리는 경우는 『조선일보』의 다른 지면처럼 스포츠면에도 존재한다. ......

박세리 보도에『조선일보』는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박세리가 작년에 LPGA에서 연전연승을 기록하고 있을 때 그녀를 끝없이 칭송하고 한국 방문시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박세리를 '미저리'처럼 쫓아다녔으며, 올해 성적이 시원치 않자 냉담한 태도로 돌변한 것까지는 다른 신문사와 똑같다. 2월 중순까지 각종 대회성적을 제외한 박세리 보도기사들의 제목은 이렇다. 「박세리 이상하다, 모래새 코치 물색 - 우즈와 라운딩」(98년 11월 24일),「박세리, 돌출발언으로 잇단 물의」(98년 12월 10일), 「핫코너:열받은 세리 스승 헤드베터」(98년 12월 10일), 「박세리, 나홀로 골프 고집 버려라」(99년 1월 17일). 성적보도에서도 '충격'등의 단어를 써가며 그녀의 몰락을 차갑게 몰아갔다.

  그러다 일시에 논조가 바뀌었다. 이는 99년 2월 19일자 「잔 다르크 박세리, 미 골프지 '한국인의 맹목적 사랑' 비판」이란 기사가 나간 이후이다. 이후 이런 기사들은 맥을 이어서 박세리를 감싸고 돈다.그리고 한때는 영웅이었다가 마녀로 몰려 죽은 잔다르크에 박세리를 비유하며, 박세리를 골포 박세리로 남겨야 하지 잔 다르크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을 마치 『조선일보』의 입장(「잔 다르크 박세리」기사는 골프전문지 『골프다이제스트 3월호의 내용을 요약·인용한 것임)인 양 이야기한다. .....
국가안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수많은 빨갱이 사냥을 해온 작태를 생각해보면 『조선일보』가 스포츠면에서 행한 '말 뒤집고 입 닦은 후 고고한 척 하기'의 예는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한 가지 다른 악덕을 이야기해보자. 스포츠면에서 남북문제는 아마 유일하게 정치색을 직접적으로 띠고 있는 영역일 것이다. 1980년대까지야 축구 같은 경기에서 남북대결을 하면 대리전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분위기였지만 90년대 이후 몇 차례 남북 공동팀을 꾸려 세계대회에 출전한 이후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각종 대회에서 공동응원단을 꾸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왔던 것이다. 최근의 대규모 국제대회였던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도 남한의 한겨레 응원단의 북한선수들을 응원하고 다닌 것도 이젠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방콕 아시안게임을 빨간 눈으로 바라본 매체는 『조선일보』였다.

남북 여자소프트볼 결승전에 관한 각 신문의 보도는 「남북 소프트볼 '화해' 주고받기」(『한겨레』. 98년 12월 8일자),  「'방콕 亞게임' 여자소프트볼, 남북 한민족 확인」(『문화일보』 98년 12월 7일자)라는 제목으로 그때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같은 날짜 『조선일보』는 「여기는 방콕:소프트볼 남북대결 - '우리의 소원' 합창 불발」이란 제목으로 여자 소프트볼 결승전을 다루고 있다. ...... 남북 선수들이 사이 좋게 서로 손을 잡고 양측 응원단에 답례한 것은 존재하지 않고, 이에 환호하고 감동하는 응원단과 이를 흐뭇하게 바라본 관계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 줄기차게 안보 상업주의를 펼친 『조선일보』에게 남북 대립구도의 와해는 달가울 이유가 없는 대상일 것이다. 『조선일보』의 비이성적인 냉전논리는 정치·사회면에만 자리잡고 있지 않다. 다음은 『조선일보』문화면의 상징인 「광수생각」이다.

정치성과 단절한(듯한) 신문만화의 문제

『조선일보』의 문화면에 자리하고 있는 광수생각」은 『조선일보』가 가지고 있는 당파성과는 거리가 있는 지고지순의 사랑과 모든 거을 포용하는 듯한 따뜻함을 무기로 한다. .....
『조선일보』가 「광수생각」을 필요로 한 것은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 섹션에서 그들을 강력하게 흡입할 만한 텍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정치면과 경제면에 무심한 것을 익히 잘 아는 『조선일보』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탈극우화한 자신들의 이미지를 심을 필요가 있었고, 「광수생각」이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것이다. 그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주입하지 않고, 자신의 극우적 색채를 숨기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일보』에 끌어들이는 방식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 즉 '색깔 흐리기'라는 『조선일보』문화면의 취지를 아주 잘 따르고 있다.

만약 『조선일보』의 극우적인 색채가 문화면에서마저 드러난다면 젊은 층의 확보는 물건너 간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기에 「광수생각」은 『조선일보』에서 외딴 섬처럼 보이는 것이다. 「광수생각」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장 추악한 한국 언론의 얼굴인『조선일보』에 자리잡기에 새로운 간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광수생각」자체의 한계와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추악한 언론의 판매를 가장 앞장서서 촉진시키고 있다는 죄 때문에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논조를 자연화시키고, 『조선일보』에게 휴머니즘이란 가면을 씌워준 죄, 그거 크다.

박식한 지식인의 무식함

강준만 교수는 일전에 『조선일보』의 글을 쓰는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대해 고언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직접적으로 실명이 거론되었던 도정일 교수와 손호철 교수가 이에 긍정하고 더 이상 『조선일보』사의 매체에 글을 싣지 않게 되었다. 작은 승리라 할 수 있을 것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최근 들어 더 많은 비판적·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을 지면에 끌어들이고 있다. 아울러 신임 강천석 편집장이 개편 전에 밝혔듯이 '놀랄 만한 젊은 필자들'의 등장이 실제 지면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이명석, 『씨네21』출신 김혜리 등이 '놀랄 만한 젊은 필자'의 파격적 기용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고, 김소영, 김성기, 정성일, 황태연, 정운찬, 조형준, 현택수 등이 비판적·자유주의적 지식인의 예가 될 것이다. ......

『조선일보』같은 극우지에 글을 싣는 이들의 주장은 매체보다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극우매체라고 하더라고 자신들이 그곳에 글을 실어서 독자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키는 것이 옮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조선일보』를, 독자를 바꿀 수 없다. 그들의 나이브한 생각은 힘들게 만들어놓은 자신의 이미지를 헐값에 극우언론에 넘겨주고 있고, 『조선일보』는 이들의 이미지를 그저 이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마치 한나라당에 개혁적 이미지를 팔아먹고 돌격부대가 된 김문수, 이우제 같은 구(舊)민중당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1980년대 『말』지에「극우 발언대」라는 코너가 있었고, 이곳에 자유총연맹의 극우적인 글들이 실리곤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이 글이 『말』지의 성격이나 독자들을 바꾸었을까. 정치·사회면이 아닌 문화면에 많은 수의 비판적 인사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끝나지 않을 『조선일보』에 대한 정당한 스토킹

최근 지면개편 이후 연재되고 있는 「한국의 주역 386세대」에서 그들의 뻔뻔함은 또다시 드러난다. 386세대가 386세대이게 한 80년대 민주화항쟁 당시 그들을 철없는 친북주의자, 주사파로 몰아대던 『조선일보』가 이제 그들이 21세기를 이끌 한국의 주역들이라 칭송한다. 그 사이의 갭을 메워주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 이 기획기사를 읽다보면 외려 데모 한번 안 하고 구속한번 안 된 386세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민주화운동을 신화화하는 데 성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 하나의 세대기획인 「서태지 세대」가 그 대상을 69년생에서 80년생으로 선언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자신의 주력독자층인 중년층들이 점점 나이를 먹어 사회에서 세력을 잃어가는 단계로 접어들자, 이제 『조선일보』는 20대는 서태지, 30대는 386으로 엮어서 청·장년층에 적극적으로, 본격적으로 구애하기 시작한 것이다. ......

『조선일보』에겐 사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사상이 필요하지 않듯이 그들을 먹여사려주는 것이라고 확신시켜주는 것이라면 어떤 이데올로기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는가가 아니라 그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최소한의 윤리성도 공정성도 없이 이데올로기를 사용한 것이 『조선일보』의 가장 큰 죄일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조선일보』의 힘을 크게 줄이고, 정당한 언론의 몫 이상의 역할을 하기 위해 불온한 아젠다 세팅을 하는 『조선일보』의 계략을 막아내는 것이다. 또한 『조선일보』가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성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거와 현재의 『조선일보』의 비열한 작태에 대하여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폭로하고 알려내야 한다. 프랑스 제2차 세계대전 후 과오를 범한 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같은 과오를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이고, 프랑스 정신을 더럽힌 언론은 기업인의 반역보다 더 악질이라 하여 나치에 협조한 언론이 1만여 명을 가혹하게 처형했다. 그때 카뮈도 "언제까지나 증오를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는 그 자체가 기억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것"이라며 언론인의 인적 청산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과거에 대한 기록과 비판에 흐지부지했는가를 알려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집단 망각증을 치료하기 위해 촘촘히 기록하고 잊지 말고 비판하자.

이 글은 개마고원에서 펴낸 <조선일보를 아십니까> 에서 요약 발췌한 글입니다.



문서정리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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