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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홍기돈
제 목 [대자보] 월간 조선이 민족문학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대자보(http://www.jabo.co.kr) 27호에서 에서 퍼온 글입니다.

월간 조선이 민족문학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홍기돈 문학평론가 <비평과 전망> 동인

  '월간조선'은 1999년 12월호에 '탈북 동포들의 수기가 침체된 민족문학에 확력을 줄 종자'라는 글을 게재하였다. 이제껏 보여준 '월간조선'의 성향에 비추어 볼 때,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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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호가 1999년 12월호 《月刊朝鮮》에 게재한 「탈북(脫北) 동포들의 수기(手記)가 침체된 민족문학(文學)에 활력을 줄 종자(種子)」의 내용은 간명하다. 그는 잘된 소설이라면 응당 인간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흐름이 절맥(切脈)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오늘의 문인들은 너무나 안일한 생활인이 되어 있다. 소시민 의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평범한 기능인, 쟁이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상의 극복을 위해 그는 탈북 동포들의 수기에 주목할 것을 문인들에게 요구한다. 수기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 세 가지, 즉 '팔려가는 여인' 모티프와 복잡한 사건의 발단이 되는 돈 문제, 한국·북한·중국 3국간의 갈등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이했던 가장 암담했던 시기,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 깨어 있던 우리의 시인·소설가들은 북(北)만주 벌판, 두만강반(江畔)이며 오랑캐령을 헤매는 동포들을 소재로 삼으면서 그런 재난이 결코 외면될 수 없는 민족·동포의 현실임을 시(詩)로서 비판했고, 소설로서 검증했다."


먼저 이 글의 「탈북 동포들의 수기가 침체된 민족문학에 활력을 줄 종자」라는 제목부터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첫째, 《月刊朝鮮》이란 이름의 상징성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다가오는데, 바로 여기에 '민족문학'의 전망을 모색하는 내용이 실리는 것은 너무도 의외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민족문학'은 폭압적 국가권력으로 대별되는 입장과의 투쟁을 통해 외연을 확장시켜왔으며, 내용을 살찌워왔다. 물론 최근의 움직임이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념적으로 정반대편에 존재하는 《月刊朝鮮》이 개입하여 전망을 모색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하다. 혹시 어색한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민족문학의 공백 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진출하여 새로운 깃발을 꽂아 선점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혹의 시선은 오양호가 거론하는 수기들이 전적으로 《月刊朝鮮》에서만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민(流民)의 땅, 야수의 땅」(1998년 3, 4월호), 「지옥으로부터 온
편지」(1999년 1월호), 「동무도 인육국수를 먹었습니까」(1999년 5월호),


「아버지, 아-하세요」(1999년 7월호), 「중국 조선족 여의사의 북한 오라버니 방문기」(1999년 10월호), 「함경북도는 해방구가 되고 있다」(1999년 11월호)  따위들. 이는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둘째, '종자'(種子)라는 표현도 역시 예사롭지 않다. 북한의 주체문예이론에서 제기하는 종자론(種子論)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소설의 핵심을 이룰 종자가 좋아야 작품이 성공할 수 있다'고 요약할 수 있는 종자론은 오양호의 글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그가 종자로 제기하는 것은 《月刊朝鮮》에 실린 수기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욱 주의를 요하는 것은 종자론의 진술 방식일 것이다. 자신들이 겨냥하는 집단의 표현이라든가 방식을 빌어다가 다시 그 집단에게 비판을 가하는 방식은 '朝鮮'의 세계에서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月刊朝鮮》의 의도는 북한에 대한 비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1997년 1월. 당시 우리 나라는 국회의 노동법 날치기 파동으로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연구실에 있어야 할 교수들까지 거리로 나섰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1월의 몇 번째 주이던가, 〈週刊朝鮮〉에는 한 줌도 안 되는 강경파가 온건한 다수의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기사가 크게 다뤄진 적이 있다. 필자가 이를 분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한 줌도 안 되는 강경파'라는 표현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한때 진보진영에서 많이 쓰던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의 패러디 아닌가. 바로 다음 주에 〈週刊朝鮮〉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정치권을 비판하는데 동참했음은 물론, 그 비판의 강도가 다른 주간지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는 않았다.

'朝鮮'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이에나 근성도 근성이지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탈북 동포들의 수기가 침체된 민족문학에 활력을 줄 종자」 역시 제목에서부터 벌써 전략적인 글쓰기의 면모가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오양호의 글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은 가능해질 터이다. "잘된 소설은  인간의 역사성과 인간의 사회성을 견지하고 있다"라는 보편 명제가 《月刊朝鮮》의 전략과 결합하면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성과 인간의 사회성'은 추상적차원에서 당위적으로 진술될 뿐이다. 이로써 역사성과 사회성은 필자가 의도하는 맥락 속에서만 문면(文面)에 등장하게 된다. 그가 "1960년대 이후의 반(反)독재문학이나 민족문학, 197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민중문학에서 이런 문학의 전범(典範)을 볼 수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추상성은 여전하다. 무엇에 대하여 어떠했다는 구체적 지점은 괄호 속에 묶여있기에 '朝鮮'측으로 돌아올 비판의 가능성은 자연히 거세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남는 것은 당위론이 통용되지 않는 민족문학의 빈곤한 현실이며,이 현실 위에서 새로운 민족문학론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당위론이다. 이 당위론 위에 오양호가 제시하는 카드가 바로 탈북 동포들의 수기에 대한 관심이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카드는 과연 그렇게 타당한 것일까. 먼저 일제 시대 때의 공간 개념과 현재의 공간 개념을 즉자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근현대 사회에 들어서 공간 개념은 제도, 특히 국가-제도의 문제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발간된 《서울공고 100년사》를 보면, 일제시대 때 서울공고생들은 만주나 일본 등지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국가-제도가 일본 내지(內地)는 물론 만주 방면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제에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창작 활동을 하던 문인들의 시야가 그만큼 넓었던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문학의 궁극적 힘이 권력으로의 구심력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원심력에서 파생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경우, 제도의 변방으로 쫓겨난 이들의 삶에 당대 작가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둘째, '복잡한 사건의 발단이 되는 돈 문제' 역시 그렇다. 굳이 탈북 동포들의 수기가 아니더라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작가라면 주위에서도 충분히 이러한 문제를 감지할 수 있다. 예컨대 98년에 있었던 정리해고 반대의 현대자동차 파업을 보자. 언론에서는 사실을 왜곡보도하였지만, 당시 울산은 그야말로 혁명전야(革命前夜)였다. 자신의 조직원들을 잘라내는데 전격적으로 동의하며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간 민주노총과의 갈등, 정부와의 전면적인 싸움을 택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 '어깨'들을 대동해 연좌농성을 벌이는 노조원들을 발로 짓밟으며 파업장에 들어서는 정몽구 사장, 주척주척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녀자와 어린 자식까지 농성에 참가해 구호를 부르는 모습.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몇 퍼센트를 잘라내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정리해고 당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삶의 터전 모두를 잃어버리는 것이기에 결코 수치(數値)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복잡한 사건의 발단이 되는 돈 문제'가 아닌가. 따라서 "탈북자의 수기이다/아니다"로 문제를 몰고 가는 것은 한 부분을 특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에 불과하며,오히려 여기서 필요한 점은 민족문학 작가들의 현장 경험 부재를 문제의 중심부에 두고자 하는 노력이다.


셋째, '팔려가는 여인' 모티프의 강조는 소재주의 차원에 머무를 뿐이다.
1935년 안수길이 발표한 「새벽」에 '팔려가는 여인' 모티프가 나타난다고 해서 탈북자들의 수기에 나타나는 '팔려가는 여인' 모티프가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현실이 존재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격적이기 때문에 관심을 요하는 것이지, 그 외의 의미 부여는 수사(修辭)의 차원에 머무를 뿐이다. 문학사적인 의미부여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구체적인 정황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추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오양호가 의미 부여를 하는 것처럼 미리 구체적 상황에 의미를 부여한 후 맥락화하고자 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전도되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여기에서 《月刊朝鮮>의 의도를 뒷받침하는 오양호의 성급한 욕망을 읽어내는 것은 필자가 너무도 과민하기 때문일까?


필자는 북한의 인권 문제라든가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우리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거기에 어떠한 조건이 붙을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고, 지금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月刊朝鮮》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보아온 바에 의하면, 그들의 민족주의는 언제나 한 면에 날카로운 칼날을 내장하고 있었고, 그 칼날이 언제 북한 동포들 머리 위에서 번쩍일지 아니면 같이(?) 민족의 아픔을 나누는 우리 위에 빨갱이의 이름을 덧씌워 내리꽂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오양호의 지적처럼, 인간의 역사성'과 '인간의 사회성'이 나에게 이러한 자각을 가능케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朝鮮'의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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