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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산하
제 목 할아버지의 세 번 웃음
‘주인’에게서 우여곡절 끝에 격리시킨 이흥규 할아버지를 일단 병원으로 데리고 갔을 때 할아버지는 몹시도 불안해 하셨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오랫 동안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판단력이 무뎌지고 그 학대에 순응하게 되어 학대의 현장보다 외부 세계를 오히려 더 두려워하게 된다지요.  하긴 그 끔찍한 방 안에서 주인에 대해 끈질기게 캐묻는 저희들을, 할아버지는 몽둥이를 들고 쫓아내려고 하셨었지요.  나가! 나가!  

그러고 보면 할아버지는 그를 지켜 봤던 근 스무날 동안 단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습니다.  때에 절은 옷과 먼지가 지층을 이룬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드넓은 일터와 쓰레기터같은 집을 오갈 뿐, 어떠한 감정 표현도 없었습니다.  과연 웃음을 잃어버리신 것일까.  서글서글한 조연출이 아양을 떨며 접근해 봤었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었지요.  의사선생님이 이흥규 할아버지에게 친절히 이곳은 병원이고 자신이 할아버님의 주치의라고 설명을 하는 순간에도 할아버지는 고개를 외로 꼬며 몸둘 바를 몰라 하셨지요.    

일단 병실에 들어가려면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잠시 머무른 저희조차 냄새 탓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방에서 도대체 얼마 동안 지냈는지 모를 할아버지를 그냥 병실에 들여보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병원 관계자 두 명이 달라붙어 1시간을 씻긴 후에야 할아버지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목욕을 끝낸 뒤 먼저 목욕실을 나섰던 병원 관계자가 진저리를 칩니다.
“하이고 저기 수채 구멍 막혔을 거예요. 그 때....  하이고 도대체 목욕을 몇 년 동안 안한 거야.” 전언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허물을 벗다시피’ 때를 벗겼다지요.  

마침내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저는 아.... 하는 탄성을 저도 모르게 내질렀습니다.  사람이 바뀌어 있었던 거지요.  검은 점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뭉쳐진 때였다는 걸 순간적으로 알았고, 할아버지의 피부가 ‘가무잡잡’한 편이 결코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그리고 몇 발을 떼신 다음........  20일 남짓 그분을 지켜본 동안 처음으로, 그야말로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습니다.  생애 거의 처음으로 경험하지 않았을까 싶은 따뜻한 보살핌과 손길에 흐뭇한 입을 벌린 속에는 이빨 세 개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지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좀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에는 짤막하게 응하시다가도 주인 집에 대한 질문이나 자신의 피해 경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리거나 동문서답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머리를 흔들어 놨습니다.  그때 할아버지의 입을 가장 오래 틔운 것은 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할아버지께 보고 싶은 사람을 여쭈었을 때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친아주머니’였습니다.  그건 형수님을 뜻하는 말이었지요.  

대체 할아버지가 이런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라는 의문을 품고 그 가족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요.  할아버지를 문제의 집에 맡긴 것은 할아버지의 형이었습니다. 그 형은 선천적인 방랑벽이 있던 사람으로 집을 떠나 전국을 떠돌아 다녔고, 이흥규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하는 형수와는 오래 전 이혼 상태셨습니다.  그 형수가 조카들을 길렀고 삼촌에 대한 추억은 아스라히 젊은 시절의 그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아버지가 남의 집에 맡겨 버린 삼촌을 찾아 보고, 추스르지 못한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만 어려운 시절 아버지조차 감당을 거부하고 다른 집에 머슴으로 맡겨버린 삼촌을 그 조카들이 챙기지 못한 것을 추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그들은 그 집에서 잘 계시는 것으로만 알았지, 이런 식의 학대가 진행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지요.  

학대의 현장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그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랫 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생각조차 하고 살지 않았던 삼촌의 현실에 분노하며, 미안해하며, 가슴을 쳤지요.  특히 나이 열여덟에 시집 와서 아홉 살 어린 시동생을 돌봤던 기억을 선명히 돌이킨 형수는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자라는 삼촌이자 시동생 머슴살이하는 거 평생 모른 체 한 주제에 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곁에 있던 제 느낌으로 그것은 참 맘이었습니다.  자신이 알아야 했던 일을 몰랐던 데 대한 자책이었고, 한 인간이 인간 이하의 학대를 받은 데 대한 분노에 더하여 학대의 대상이 자신과 피를 나누고 한때의 정을 맺은 가족이었다는 자각이 그들의 울음보를 터뜨렸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병실을 찾기 직전, 후배 PD가 할아버지에게 가족들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이야기했습니다. 보고 싶지 않다고, 보고 싶으면 뭘 하느냐고......  자신을 버린 가족에 대한 원망이었을까요.  가족들이 병실 안에 들어온 뒤에도 할아버지는 무덤덤한 표정을 풀지 않았습니다.  50년 머슴 생활을 끝낸 초췌함 탓인지 형수도 50년 전의 도련님의 모습을 도무지 읽어 내지 못했고 열 여섯살 위의 치매 걸린 누님도 멀뚱하기만 한 상황......  갑자기 할아버지가 침대를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어수선해서 정신이 없으신가보다” 는 조카 앞에서 슬리퍼를 단정히 신으시더니 누님 앞에서 무릎을 꿇기 시작했습니다.  큰절을 올리고 계셨지요.   실로 오랫 동안 미뤄 온 누님께 대한 인사였습니다.  가족의 등장이 그의 칠흑 같은 기억에 불씨를 틔우기 시작한 겁니다.

60여년 전 “정신대를 피해 시골로 시집왔던” 형수는 동네 예배당에 다니며 부르던 찬송가를 불러 주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그때 할아버지의 입이 조금씩 열리고 비슷한 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웅얼웅얼, 그러나 점차 명징해지는 할아버지의 기억처럼 노래는 점차 분명한 형상을 띠어 갔습니다.  내 일생 소원은 주 찬송 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그 노랫말 사이로 할아버지는 갓 시집 온 형수 손을 잡고 깡총거리며 예배당을 가고 형님과 형수님 사이를 파고들며 안방에서 자겠노라며 어리광을 피우던 어린 날의 흥규 도련님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흑발에 홍안, 신혼 시절의 형과 형수 사진을 보여 주었을 때 할아버지는 젊은 날의 형수를 가리키며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지요.  그것이 제가 본 두 번째 웃음이었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자신이 살던 그 지옥같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걸 세뇌라고 해야 할지, 관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마을은 할아버지에게 온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지금 어디 가는지 아느냐고 묻는 조카의 말에 **리로 간다는 할아버지의 넋두리는 또 한 번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었지요.   주인에 대해 묻는 저희에게 가라고 몽둥이를 들던 할아버지, 눈자위의 멍 자국을 보여 달라는 말에 모자부터 내려 버리던 할아버지는 끝내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실 것 같았습니다.  

요양원에 들어가는 날은 할아버지의 법적 생신이었습니다.  즉 진짜 생신은 아니었지만 가해자가 할아버지의 수급금을 타먹기 위해 만든 주민등록증 (그 이전에는 주민등록이 없었다고 합니다) 상의 생신이 그날이었기에 가족들은 아마 이흥규 할아버지 생애 처음이었을지도 모를 파티를 열었습니다.  주위에 가족들 예닐곱명이 둘러싼 가운데 할아버지는 행랑방 찬밥이 아니라 미역국에 불고기가 곁들인 밥상의 중앙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요.  촬영 내내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소리가 할아버지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망할 사람이야.”

순간 좌중은 조용해졌지요.  제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누가요 할아버지?”  그때 할아버지는 또 한 번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지요. 그때 조카가 거들고 나섰습니다. “삼촌, 내가 혼내 줄께. 누가 그랬어? 내가 나쁜 놈들 혼내 줄께.”  실제 방송에서는 이 내용이 잘렸습니다.  할아버지의 노예 생활을 몰랐다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를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조카로서는 좀 경박해 보인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말에 힘을 입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몽둥이로 때렸어요 발길로도 차고......아주 별 지랄을 다했어요.  장가 안 갔다고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전문가의 세련된 호소에도 제작진의 끈질긴 질문에도 의사의 조근조근한 상담에도 입 안에만 갇혀 있었던 증언이 마침내 우리 귀를 울렸던 겁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또 한 번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세 번째 웃음과 더불어 할아버지는 그제야 주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노예’ 아닌 ‘피해자’로 스스로의 신분을 바꾼 것입니다.  할아버지에게 그 용기를 준 것은 결국 저희 제작팀이나 전문가나 의사가 아니라 아직은 미덥지 않고 할아버지에 대한 방임의 책임까지도 일부 지고 있는 가족들이었던 셈이지요.  

할아버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요양원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실 것이고 환수된 할아버지의 수급금은 따로이 공식 채널을 통해 관리될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할아버지를 맡기기에는 지난 세월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고 거기에 짓눌렸던 것이 할아버지의 한평생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할아버지의 세 번 웃음 속에서 할아버지가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천분지 일 만분지 일이나마 맛보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누군가 정성스럽게 자신의 몸을 씻어 주고 그 노력으로 자신의 더럽혀진 몸이 씻겨 나갈 때의 쾌적함,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퍼 올리는 두레박같은 추억의 대상과 마주하는 것, 그리고 세상 어디에 갔다 놔도 내 편이 될 사람이 있다는 그 거짓말같은 용기들의 샘.....   어쩌면 그것들이 우리가 가족을 찾는 이유들이 아니었을까요.  몸서리치게 가족을 그리워하고 가족과 교류함으로써 얻고 싶고 떠올리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아니었을까요.   할아버지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그 짧은 순간이 유일했습니다. 그 전은 물론이고 그 뒤로도 저는 할아버지에게서 비슷한 얘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툭하면 다시 가해자의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해서 듣는 사람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긴 하셨지만요.

할아버지는 가족을 그렇게 만났고 다시 헤어졌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기대감’을 배우게 되겠죠.  “논 가는 이서방 상기 아니 일었느냐”는 주인의 호령이 아니라, 서울 가신 오빠가 비단 구두 사오고, 일 나간 아빠가 산수유 열매를 따 오듯 산자락 깊숙이 자리잡은 요양원에 자신을 찾아 오는 조카와 조카의 자식들의 새된 소리를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게 되겠지요.  지금까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할 가족들이 앞으로는 대한민국 그 누구보다도 기박한 팔자를 살았던 한 노인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게 되기를 바라 봅니다.  평생 아무런 기대를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그를 위해서 말입니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olumn_sanh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89

2006/05/24 (18:11:21)    IP Address : 211.41.200.124

Notice  =축= 산하(김형민) 님의 <썸데이서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시만 2003/12/21 1573
Notice  들러주시는 이들께 - 약간의 안내 시만 2003/07/24 1357
Notice  산하 님에 대한 하종강 님의 소개("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에서) 시만 2003/07/24 1548
287  화장실의 비극 산하 2006/10/28 1148
286    [re] 화장실의 비극 호수저편 2007/06/26 814
285  성길이 보아라 산하 2006/10/25 1067
284  "콩나물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산하 2006/10/25 1065
283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산하 2006/10/14 1147
282  서희의 편지 산하 2006/09/27 884
281  괴물 산하 2006/09/21 858
280  가화만사성? 가족만사성 산하 2006/09/12 855
279  플란더스의 개 산하 2006/09/03 1005
278  견권과 인권 산하 2006/08/30 806
277  5분 지각에 200대 산하 2006/08/18 848
276  내가 감독이라면..... 산하 2006/08/16 829
275  핌과 구에라임 산하 2006/07/21 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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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찬차가 산하 2006/06/30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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