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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산하
제 목 슬픈 오버랩
(2006. 5. 27)


저도 아버지 자격이 풍족하다고 느껴 본 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요즘 제가 맡은 일을 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다보면 정말이지 부모 자격 없다 싶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도대체 사주팔자가 어떻기에 이런 부모 슬하에서 생명을 얻었나 싶은 아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부모의 그림자가 참으로 고스란히 아이의 영혼을 뒤덮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아이들을 북처럼 두들겨 패는 아버지도 있었고 “학창시절에는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못하는 게 없이 활발했던” 한 여자를 정신이 나가도록 두들겨 패고도 “남편이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빈둥빈둥 누워서 밥도 안한 꼴을 보면 누가 가만 있겠느냐.”면서 항변하던 괴물 닮은 남편도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제게 가장 괘씸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괴물 류는 아닙니다.  그런 괴물들은 차라리 콩밥이나 먹이고 징역이나 살리면서 정신 좀 차려 임마 하면서 손을 탁탁 터는 맛이라도 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좀 애매하고, 나쁜 놈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좀 선해 보이는데 그 폐해를 따지면 되레 괴물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적지는 않은 사람들, 괴물들은 포기라도 하지만, 저 사람은 뭔가 될 것도 한데 하면서 기대를 걸기도 하는데 그 기대를 어린애 손 비틀 듯 무자비하게 꺾어 버리는 이들이 바로 제가 괘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포악한 아버지, 남편이 아니라 무책임하고 무능한 아버지, 남편들이 그들이지요.

언젠가 다니는 공부방을 수시로 뒤집어 엎었던 공포의 태권 소년(?)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아이는 평소에는 멀쩡했지만 가끔 분노 발작을 일으키면 흡사 헐크처럼 변해서 공부방을 박살냈지요.  그 아버지는 스스로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알콜 중독이었습니다. 그리고 술 취한 뒤 행했던 행동을 아들이 그대로 전수받았던 게지요.  그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 아들이 어떤 난리를 일으키는지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아버지의 말은 파출소에나 연락해 보소 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들의 영상을 보여 줬을 때 그 아버지는 극적으로 변하는 듯 했습니다. 땅을 치며 통곡하며 자신의 무관심을 탓했습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도와 달라며 자기도 술을 끊을 테니 아들을 치료해 달라며 울부짖었지요.   몇 년 사이 아내가 죽고 명예퇴직을 당하는 등 갑자기 밀어닥친 불행 앞에 좌초해 버린 한 중년의 사내가 통곡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짠했습니다.   아들의 치료와 아버지의 알콜 치료를 병행하면서 우리는 알콜 중독의 영향으로 썩어가던 고관절 수술까지 주선을 해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그것까지는 생각 안했는데 아버지가 병원까지 지정하며 거기서 수술 받고 싶다고 하길래, 그 병원을 섭외해서 수술을 주선한 것이죠.  

그런데 달포 전, 저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시는 술을 먹지 않는다고 내 아이가 저런데 술을 또 먹으면 내가 사람이겠냐고 장담에 장담을 거듭하던 그 아버지가 세상에 고관절 수술을 한 다음날부터 술을 퍼먹었다는 거지요.  아이는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지만 가장 큰 원인 제공자가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으니 만약 지금은 밖에 나가 살고 있는 아버지가 돌아올 경우 그 아이가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다 보면 맥이 풀려 아무데나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맙니다.  

신기한 것은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을 쓰레기더미 속에 살게 해 놓고도 자신은 방임한 적이 없다고 우깁니다.  부모 노릇을 안한 것이 없다고 우기며 다만 환경이 좋지 않아서 관심을 덜 준 것 뿐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제 자신입니다.  그 말도 안되는 변명에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종국엔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얘들 아빠 (엄마) 아닙니까 하고 굳은 표정 지으면 거기에 넘어가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이 무책임하고 무능한 부모들이 “그래도 부모”론을 설파하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절절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대하다 보면 저 자신 머릿 속에서 “어느 쪽을 믿을까요 하느님께 물어봅시다”를 되뇌고 있을 때가 많다는 거죠.  거의 번번이라고도 해도 무방할만큼 배신당하고 결국 우리 프로그램의 사후관리팀장만이 전국을 누비며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말입니다.  “애들은 못나도 부모 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체험적 진리인지 마땅히 깨져야 할 신화인지를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후자에 손을 듭니다만, 막상 못난(?) 부모 앞에서는 없던 서슴이 생기더라는 거지요.

팔자에 없는 사회복지사 내지 흥신소 직원 내지 어설픈 해결사 노릇을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포악한 부모보다는 아이들에게 무관심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 실질적으로 무능한 부모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포악은 포악함 그 자체로 경원시되고 주위의 견제를 받고 제지받기도 쉽지만 부모의 방임과 무능 (이건 경제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은 “부모도 힘들기 때문에”, “오죽하면 그러겠어.” 하는 핑계와 “그래도 부모인데.....”하는 황당한 믿음을 벽돌로 해서 쌓아올린 튼튼한 무관심의 성벽 안에 아이들을 가둬 버리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의 눈물겨운 호소문을 읽을 때 저는 비슷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무능한 남편이었을지는 모르나 성실한 남편이었다.”고 호소하는 대목에서는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제가 지금 목하촬영 중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지요.  나름 열심히 했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뭘 했냐고 물으면 묵묵부답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아울러 들었고 말입니다.   ‘민주평화 개혁 세력’의 반대되는 세력에게 당연한 행동을 부끄럼없이 행했던 ‘민주평화 개혁 세력’이 죽어간다고 절규하면서 그를 밀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 줘도 ‘그래도 부모’론 이상으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괴물이 되는 꼬락서니를 눈 앞에 보여 주고 그 끔찍함에 함께 몸서리치면서 훌륭한 아버지가 되겠다는 다짐을 받고 다분히 엉뚱하다는 말을 들어가며 아버지의 고관절 수술까지 주선했건만 수술 다음 날 두꺼비를 까 버린 아버지와, 탄핵 뒤 양초 공장 대박을 터뜨리며 종로 거리를 늘어섰던 시민들의 두둔으로 과반 정당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이 그 이후 행했던 그 화려한 삽질들이 오버랩되는 것 또한 제 시야에서 막을 수 없었습니다.  기껏 사학법을 통과시켜 놓고도 슬금슬금 물러서는 센스, 흥분제라도 먹은 듯 좌우무시 일로매진 파죽지세의 기세를 타고 있는 FTA,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는 인권위원회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 ‘민주평화 개혁 세력’의 노동부 장관.......  오버랩 시킬 장면들이 너무 많아 편집할 때 고민될 지경입니다........

그런 다음 민병두 의원님은 무능한 남편을 택할래 부패한 남편을 택할래 하면서 으름장 닮은 호소를 하셨습니다.  이 풍경도 제게는 익숙합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었거든요.  “그래도 내가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애들한테는 제가 없으면 안돼요.”  

곧 죽어도 자신의 무능과 무관심을 학대는 하지 않았다는 변명의 누더기로 감추려는 발버둥이 측은할 정도였습니다만, 그 측은함 뒤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얄미움이 스멀스멀 등을 타고 올랐었습니다.  “이 양반아 차라리 학대를 해라. 그리고 당신 없어도 되거든? 세상에는 무능한 부모하고 학대하는 부모만 있는 건 아니거든.  부모 아니더라도 부모 대신할 시설도 있고 사람도 있거든.  당신 없음 아이들 인생 끝난다고 설레발이나 치지 말든가.”  

P.S.  그런데 가끔 정말로 반성하면서 '사람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정확하게 얘기할 줄 아는 분들이었죠.  "무조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를 땅에 대는 분들은 정작 뭘 잘못했냐고 물으면 두리뭉실 부모 노릇을 못했습니다 하고 넘어갑니다.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머리 숙인 분들께 진실로 묻고 싶었던 것은...... "뭘 잘못했는지 알긴 아시나요. 한 번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세요."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olumn_sanh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0

2006/05/27 (12:24:26)    IP Address : 211.41.200.124

Notice  =축= 산하(김형민) 님의 <썸데이서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시만 2003/12/21 1573
Notice  들러주시는 이들께 - 약간의 안내 시만 2003/07/24 1357
Notice  산하 님에 대한 하종강 님의 소개("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에서) 시만 2003/07/24 1548
287  화장실의 비극 산하 2006/10/28 1148
286    [re] 화장실의 비극 호수저편 2007/06/26 814
285  성길이 보아라 산하 2006/10/25 1067
284  "콩나물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산하 2006/10/25 1065
283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산하 2006/10/14 1147
282  서희의 편지 산하 2006/09/27 884
281  괴물 산하 2006/09/21 858
280  가화만사성? 가족만사성 산하 2006/09/12 855
279  플란더스의 개 산하 2006/09/03 1005
278  견권과 인권 산하 2006/08/30 806
277  5분 지각에 200대 산하 2006/08/18 848
276  내가 감독이라면..... 산하 2006/08/16 829
275  핌과 구에라임 산하 2006/07/21 874
274  고향을 알려드립니다 산하 2006/07/05 866
273  찬차가 산하 2006/06/30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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