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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산하
제 목 사람은 희망이 아니다
(2006. 6. 2)



왕년에 박노해라고 불리웠던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십수년전 투쟁의 현장에서는 당연히 아니고 무슨 출판 기념회에서도 아니다. 언젠가 그가 내가 다니는 회사의 로비에 왔었다.  무슨 디지털 포럼인가 뭔가 아님 로비에서 자주 열리는 무슨 전시회였던가.  출장 뷔페가 차려지고 VIP석이 기라성같이 늘어선 가운데 그 행사가 뭔지는 전혀 관심이 없이 바삐 현관문 문고리를 잡다가 눈에 띈 수염을 곱게 기른 사내, 그가 박노해였다.  아니 박기평이었다.

그래도 나는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아 박노해...... 시라고는 학력고사 출제용 시 외에는 관심이 없을만큼 감수성 제로, 문학성 마이너스의 나에게 시란 이런 것이다는 걸 가르쳐 주었던 사람이 홀연 내 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감동이 없을 수 있겠는가.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소주의 느낌이 식도를 훑었고 뱀도 독이 있어야 뱀이고 쌘방도 날이 달려야 쌘방이듯이 살아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짜 노동자라고 무대에서 나 자신 읊조렸던 기억이 '횃불로 살아왔던' 것이다.  

개량한복이었던가, 무척 우아한 옷을 입고 그는 성직자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온화했다. 부드러웠다. 대체 이 행사에 그가 어떤 이유로 초대되었는지 행사의 내용조차 기억 못하는 내가 짐작할 여지는 지극히 작았지만 나는 그 염화미소를 무척이나 아니꼽게 쳐다보면서 문을 나섰다.  그 흐릿한 기억 속에 내가 내뱉았던 한 마디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사람만이 희망이라?  그걸 이제 아셨나."

사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한 그의 그때 모습에 대해 실망하고 어쩌고는 접어서 종이 비행기를 날린다고 치자.  나 역시 치열했던 그의 젊은 시절의 십이분의 일도 경험하지 못한 처지에 그의 깨달음에 감히 의문을 표할 자격이 되겠는가.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싯귀에 실었던 시인의 본래 뜻을 한참이나 벗어남을 알면서도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나의 내부에는  강금실이라는 사람에 대해 강한 호감이 존재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평검사와의 대화를 방송사가 출동 중계하던 무렵, 대통령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았던 그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말로.  그리고 그토록 난리법석을 부리던 검사들의 상관으로 앉았던 얼마간 그녀는 강단지고 훌륭한 리더쉽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전부다.   '공안' 수요 많은 울산에 누구를 보내고 어쩌고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어쨌든 그는 "국가보안법 따위는 박물관으로"를 주창했던 대통령 아래의 법무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퇴장까지도 멋있었다.   그리고 서울 시장 선거에 나온 뒤, 그녀의 행동은 당당했고 일흔 두 시간 잠을 자지 않고 시민들 앞에 나선 것은 손바닥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는 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멋있다고 입맛을 쩝쩝거리다 보면 왕년에 그녀보다 백배는 멋있었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건 노무현이었다.  백전백패의 선거판에 뛰어들어 사람보다는 파리의 수가 많았음직한 유세장에서 홀로 목을 찢던 남자.......   "나를 아는 분들은 이 메일을 보아 주십시오."  생전 연락 없던 선배가 내게 보낸 메일의 제목이었다. 그 메일에는 그렇게 감동적인 남자의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사자후가 담겨 있었다.   지금 한나라당 사무총장 노릇하는 허태열이가 "이 정권 출범 뒤에 형편 나아진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손 드는 사람이 있자) 전라도에서 오셨습니까?" 하던 그 시절이다.

나는 그에게 희망을 보았다.   50년전의 장인의 혐의를 들먹이던 왕년의 청문회 스타 동기에게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정면으로 들이대던 그가 좋았고, 적어도 그 정도의 사람은 배신해도 크게 배신하지는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을 깨웠다.  적어도 80년대의 정서로,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를 노래했고 그 가사는 까먹었지만 멜로디는 기억하는 사람들을 묶어 세웠던 것은 그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노무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믿을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금실로 돌아와서....... 나는 그녀에게 호감이 있음은 고백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패배'에 감동하기엔 너무 노무현의 면역 주사 효과가 컸음을 덧붙일 수 밖에 없다.   72시간 유세는 대견하지만..... 나도 그 정도는 일했다.  이 잠돌이가 96시간 잠 안 적도 있다.  목구멍이 검찰청인데 할 수 있나.   그거 외에, 강금실의 패배의 아름다움은 잘 모르겠다.   강금실 본인 고백하듯 "거리에 나오면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왜 지지율은 이러냐"는 질문처럼 거리에서 그녀는 아름다왔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노무현 이상의 감동은 받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아름다운가.  그 아름다움이 노무현이 준 그것과 비길만한가?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가?

그 감동을 준 노무현을 오늘에 볼 때 나는 왕년의 감동에 발길질을 한다.   한 사람에 희망을 올인한 내가 우습고 불쌍하기까지 한 참담함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바뀔 것인가.   이제는 귀에서 쉰내가 날 지경이지만 "조중동이 있는데",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싫다고 한나라당을 찍는 민도낮은 백성들이 있는데."

조선 총독부의 권력을 무덤에서 빌려오지 않는 이상 조중동의 폐간은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누가 돼도 조중동은 물어뜯을 것이고 짓밟을 것이다.  물어뜯기면 뜯어말려 주고 싶었고 짓밟으면 욕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응당 그러리라 생각하던 사람이 조중동의 격려를 받을 때는 정말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었다.   꼴통노빠 (이 표현을 쓰는것을 용서하시라) 식으로 "조중동 마침내 노무현의 노림수에 걸려들다"라고 하며 희희낙락해야 하는 것인가.

열린우리당이 싫다고 한나라당을 찍는 것이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것은 차떼기고 뭐고 니들도 똑같더라는 것이고,  니들이 입만 벌리는 '민주평화개혁세력'이 왕년의 '산업화 세력'의 악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신의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개혁해라가 아니라 너희들 하는 게 개혁이라면 차라리 수구가 낫다는 것이다.  그 발상에 노여움을 표하며 한탄하기 전에 우리를 탓하자. 그리고 당신들을 탓하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또 한 번 강금실을 둘러싼 '사람이 희망이다'에 땅을 치고 반대한다.  강금실은 멋있게 졌다. 그건 개인적인 미덕일 뿐, 그녀가 내게 준 희망은 아무것도 없다.  강금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으며, 강금실이 종내 대권을 장악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한 번 "강금실의 당선이 역사의 진보"라고 설레발을 칠 것인가.  

사람만이 희망이다? 노! 사람은 희망이 아니다.  강금실이 희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강금실이 바꿔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사람이 희망인 시절은 지나갔다.  한 사람에 역사를 투영하고 저 덜에 푸러런 솔잎을 보라고 치는 기타로 뭇 사람들을 깨우던 시절은 월드컵 4강신화와 함께 빛이 바랬다.    사람에 목매지 말자. 제발. 이건 기표소에 들어가서 4번 찍노라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도 1번과 4번을 왔다갔다 했던 나에게 외친 소리다. 그 소리의 효과가 얼마나 갈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만약에 대선에서 박정희의 딸과 왕년의 칠성판 위의 고문 피해자가 맞붙는다면, 또는 우리의 효리언니가 맞붙는다면 나는 솔직히 손끝의 겐또 실력에 내 표를 맡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에도 내 속에선 이런 외침이 귓전을 때릴 것이다 내심..... 사람이 희망이 아니다.  제발 사람에 묻히지 말자.  그거 내가 일하면서 즐겨 하는 연출이고 과장이고 숨김이고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 분 바른 모습일 수도 있다. 사람은 희망이 아니다.   더구나 '사람만이' 희망은 아니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olumn_sanh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1

2006/06/10 (14:01:58)    IP Address : 202.150.188.225

Notice  =축= 산하(김형민) 님의 <썸데이서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시만 2003/12/21 1573
Notice  들러주시는 이들께 - 약간의 안내 시만 2003/07/24 1356
Notice  산하 님에 대한 하종강 님의 소개("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에서) 시만 2003/07/24 1548
287  화장실의 비극 산하 2006/10/28 1147
286    [re] 화장실의 비극 호수저편 2007/06/26 814
285  성길이 보아라 산하 2006/10/25 1066
284  "콩나물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산하 2006/10/25 1065
283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산하 2006/10/14 1146
282  서희의 편지 산하 2006/09/27 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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