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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산하
제 목 아이에게 가르치는 6.25
(2006. 6. 26)



학교에서 무슨 말을 듣다 왔는지 궁금증 한창 많은 아들 녀석이 6.25에 대해 묻습니다.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기관총같이 따따거리더군요.  6.25는 누가 일으켰어?  탱크가 몇 대였어?  전투기는 몇 대였어?  군함은 몇 대였어?  공산군은 몇명이었어?  국군은 몇명이었어?

왕년에 초중고 시절 6월 25일에 운나쁘게도 '연구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반의 일원이었던 관계로 6월 25일 당시 남북한 전력 비교를 빠삭하게 외웠던 것이 뜻밖의 자산으로 남아 저는 아이의 호기심을 웬만큼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탱크는 우리는 한 대도 없었고, 북한은 242대 정도..... 인민군은 19만 8천명 정도로 추정되고 국군은 9만 8천명, 전투기는....."    무심하게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읊어가는데 "그래서 누가 이겼어?"라는 질문에 말문이 약간 막혔습니다.  

"누가 이긴 것 없어.  준하야.  전쟁 때 남북 다 합쳐서 2-3백만이 죽었거든.  그러고도 남북한은 지금도 사이가 안좋잖아.  누가 이긴 것 없어."
"우리가 땅 더 빼앗지 않았어? 원래는 38도선이었다며. 지금은 휴전선이고......"
"그 땅 빼앗았다고 이긴 건 아니야.  전쟁은 땅따먹기가 아니니까."
"땅따먹기 아님 뭐야?"

  에디슨의 담임 선생님이 아마도 이런 심정이었을 겁니다.  말문은 막히는데 콱 쥐어박을 수도 없고, 조용히 해 임마 하고 넘어가는 건 부모의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는데 아이가 느닷없는 질문을 추가해 옵니다.  

"그럼 어느 쪽이 좋은 편이었어?"

이때만큼은 제가 자라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명료하고도 심플하고도 흥미진진하게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괴뢰군의 기습 남침으로 3일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였으나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 16개국의 도움과 불세출의 명장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 성공으로 반격에 성공,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 오랑캐의 인해전술로 피눈물을 흘리며 후퇴한 끝에 오늘의 휴전선에서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라고 설명해 주면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저에게나 아이에게나.    더군다나 '우리 편'과 '나쁜 편'을 명확하게 구분해 주기를 원하는 아이에게 저 설명은 그럴 수 없이 머리에 쏙쏙 들어올만하죠.   그러나.....  

"어흠... 준하야.  남북 둘 다 좋은 편이 아니었어."
"뭐야?  그런 나쁜 편끼리 싸운 거야? 북한이 쳐들어 왔다며."  

아 머리 아픕니다.  전쟁이 6월 25일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어도 그 복잡미묘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신 탱크 캐터필러처럼 머리를 돌리다가 옳다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건 북한이지만 말이야.... 에 또......  준하야....  네 친구가 준하를 바보라고 계속 놀려. 그래서 준하가 먼저 때렸어.  그럼 누가 잘못일까?"
"둘 다 잘못이지."
"그래 바로 그거야  준하야."
"그럼 남한이 북한을 약올렸어?"
" 그.... 그게...... "
"아빠 생각해 보니까, 때린 놈이 잘못이야. 왜 때려 말로 하면 되지."
" 어.... 그게..... 남한이 북한을 아주 안때린 건 아니고 말야.... 아 미치겠네."

다행히 제 아들 녀석은 집요함보다는 호기심의 포스가 더 강하고 다양한지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미국은 왜 우리를 도와 줬어?"
그냥 "자유 우방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70년대식의 버전을 써먹을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그 굴뚝을 애써 틀어막은 채 아이에게 안간힘을 다해 설명했지요.  

"준하야.  준하 반에 게임기를 가진 친구가 있어.  준하는 걔하고 친해서 게임기를 맘대로 할 수가 있는데 딴 녀석이 그걸 뺏으려고 해.  근데 준하는 힘이 세.  어떻게 할래?"  
"말로 할 건데?  그러지 말라고."
"............ 만약 걔가 게임기를 가지면 넌 게임을 못해. 넌 꼭 해야 돼. 어떡할래."
"선생님한테 이를 건데?"
"..............  걔 두들겨 패지 않을 거니? "
"그럼 그래서 미국이 북한을 두들겨 팬 거야?"

하아......  조금 난해한 코스를 거치긴 했습니다만, 제가 납득시키고자 했던 사실을 약간은 이해한 듯 합니다.  그럼 "남한이 무슨 게임기를 가졌었는데?"라고 물었다면 아마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나중에 네가 공부해"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때 아이가 매우 똑똑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그럼 미국이 우리를 도운 게 아니라 자기 게임하고 싶어 그런 거야?"

   여기에 "빙고!"를 외치고 싶어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생각이 그 달싹임을 멈추게 했습니다.   지금까지 몇 마디 나눈 대화를 통해 아이의 뇌 속에 입력된 생각이 학교에서나 아이들의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튀어 나올 때,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북한만이 나쁜 넘이 아니라 남한도 똑같은 넘이었다고 아이가 이야기할 때 운나쁘게도 70년대 유신만이 살 길이다를 외쳤던 인간이 아직 정년퇴직 하지 않은 교사로 남아 있다면......  요즘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6.25'를 주제로 한 연구수업에서 만장하신 장학사와 학부형 앞에서 "미국은 우리를 도운 게 아니라 자기 게임 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라고 말하는 엉뚱함을 선보인다면......   거기다가 6.25는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남한도 북한을 때리고 북한도 남한을 때리는 와중에 크게 한 방 날린 거 뿐이라는 식으로 너스레를 떤다면.....

저는 제가 가르친 내용이 절대로 '편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나마 제 생각과 역사적 사실을 최대한 아이의 수준과 처지에 맞게 순화했다고 자부하지만 그 내용에조차 눈을 부라릴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너무나 많으며 지난번에 '엉뚱한 소리' 한다고 교사를 고발했던 학부형들처럼, 준하 아빠의 사상을 의심하고 싶어하는 희한한 분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혀 위에 소태가 감돌지 않을 수가 없지요.   공연히 아이에게 '이상한 소리' 한 게 아닌가 걱정도 들고 말입니다.

'교육부'에서 '학도호국단'을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는 나라에서, 전쟁에 대해 다른 시각을 말했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서, 교사가 국정 교과서와는 일치하지 않는 얘기를 했다는 이유로 벌떼같이 학부형들이 들고 일어나 "아이들에게 이상한 생각을 '주입'시킨다"고 부르짖는 나라에서 (아니, 그럼 교과서가 주입시키는 사상에 대해선 왜 의심을 않을까?)  아이에게 공들여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용기인지 만용인지 저 자신 헛갈리는 6월 25일이었습니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olumn_sanh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4

2006/06/27 (11:56:38)    IP Address : 211.41.204.156

Notice  =축= 산하(김형민) 님의 <썸데이서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시만 2003/12/21 1573
Notice  들러주시는 이들께 - 약간의 안내 시만 2003/07/24 1357
Notice  산하 님에 대한 하종강 님의 소개("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에서) 시만 2003/07/24 1548
287  화장실의 비극 산하 2006/10/28 1148
286    [re] 화장실의 비극 호수저편 2007/06/26 814
285  성길이 보아라 산하 2006/10/25 1067
284  "콩나물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산하 2006/10/25 1065
283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산하 2006/10/14 1147
282  서희의 편지 산하 2006/09/27 884
281  괴물 산하 2006/09/21 858
280  가화만사성? 가족만사성 산하 2006/09/12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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