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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산하
제 목 내가 감독이라면.....
(2006. 8. 16)



제가 사극 작가나 연출을 할 기회는 두 번쯤 다시 태어나야 올까 말까 하겠지만 만약 제가 그 입장에 서게 된다면 꼭 소재로 삼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네덜란드 사람 벨테브레입니다.  조선을 유럽에 알린 하멜보다 25년 먼저 조선에 표착했던 사람이지요.  

네덜란드 라이프 출신의 얀 얀세 벨테브레는 전라도 지역에 물을 구하러 상륙했다가 동료 3명과 함께 주민에게 잡힌 후 조선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25년만에 그가 고국 사람을 만났을 때 그는 처음에는 손짓과 발짓을 사용해야 했을 정도로 네덜란드 말을 거의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하멜 일행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의 네덜란드 말은 되살아났지요.

  그는 하멜에게 이야기하지요.  “때때로 왕과 대신에게 일본으로 송환시켜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고 조선 관리들은 내게 네가 새라면 그리로 날아갈 수 있겠으나 외국인을 자국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의 법도이므로 여기서 평생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멜 일행에게 더듬더듬 이 말을 화란 말로 전한 뒤 벨테브레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소매가 젖도록 진종일 울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소매는 “옷의 앞부분과 두 팔,소매에는 단추가 있다” (제주목사 이원진이 보고한 네덜란드인들의 복장)는 네덜란드 옷은 아니었을 것이고, 두루마기 아니면 저고리에 달린 것이었겠지요.   평생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던 고향 사람을 만난 반가움이었을 수도 있고, 오랫 동안 잊고 있던 고향 생각의 북받침이었을 수도 있고, 하멜 일행의 앞길에 닥친 불행에 대한 연민도 겹쳤을 수도 있겠죠.

  “새라면 이 나라를 떠나겠지만, 아니라면 떠날 수 없다.”는 완고한 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뿌리를 박고 조선 여인과 결혼, 1남 1녀를 두었던 벨테브레의 조선식 이름에서 저는 문득 마음이 뭉클해졌었습니다.  그 이름은 박연 (朴燕)이었습니다. (延이라고 기록된 것도 있습니다만) 네덜란드 이름 얀의 한자식 표기일 수도 있겠지만 제비 연자를 이름으로 썼던 그는 가을이 되면 가벼운 몸을 바람에 싣고 강남으로 향하던 제비처럼 바다 위를 날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기록은 하멜의 말과 왕조실록이나 윤행임의 문집의 짤막한 언급이 전부입니다.   17세기의 조선에 나동그라진 한 이방인의 일생은 충분히 제 빈약한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윤행임의 기록에 따르면 다른 네덜란드인들이 벨테브레를 “호탄만”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 네덜란드 말로 ‘호프만’, 즉 대장이라는 단어의 와전일 것이라고 합니다.  벨테브레는 선장까지는 몰라도 갑판장이나 항해사 정도 되는 고급 선원이었을 것이고, 교육도 꽤 받았을 것 같습니다.  표착한 뒤 그는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일본군 포로와 표류한 중국인을 이끄는 외인부대를 지휘하게 됩니다.

  병자호란을 만나고 그의 동료 2명은 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습니다.  죽어간 두 사람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청나라군에 맞섰을까요.   그리고 그때 벨테브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볼모로 잡혀 있던 시절  아담 샬 등 서양인들과 잦은 접촉을 했던 소현 세자가 귀국했을 때 국내 유일의 서양인이라 할 벨테브레를 부르지는 않았을까요.  벨테브레와 친밀한 종교는 아니었겠지만 서양 종교인 카톨릭을 이해하고 서양 문물을 몸소 들여온 은자의 왕국의 왕세자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이지 않았을까요.  

박 제비.... 즉 박연은 하멜이 훈련도감에 배속되었을 때에도 그 부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훈련도감의 대장이 바로 이완 대장이었지요.  허울만 좋지 실속은 없고, 실지로 단행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음직한 북벌의 외침 속에서 서양인들은 ‘솜씨 좋고 정교하게’ 화포를 만들고 조총을 주조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그들의 기술을 완벽하게 사장키시고 말았습니다.
  
벨테브레를 통해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변화, 다시 말해서 우리 역사의 미세한 변화들을 재미있게 보여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대미문의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피폐한 나라의 외인부대장, 제비가 되지 않으면 고향에 돌아갈 희망은 없고, 아니면 돌아갈 고향이 없는 자들을 이끌고 표류한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던 사람, ‘병서에 밝고 화포를 정교하게 다룬’, 네덜란드인의 ‘대장’ 벨테브레는 그 앞에 펼쳐지는 조선의 파노라마를 어떤 심경으로 구경했을지,  그리고 25년 뒤 고향 사람을 만나 더듬거리는 고국 말로 의사소통을 한 후 바닷가에서 통곡할 제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던 절규를 상상해 보면 웬지 가슴이 지릿한 느낌을 막기 어렵습니다.


괜한 사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요즘의 사극들을 보고서 조금은 약이 올라서입니다.  상상력을 통해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작가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 일이 기록에 없다.”는 까탈스러운 주장 따위는 초저녁에 집으로 돌려 보낼 수 있고, “있었을 법한” 일들을 작가의 머리 속에서 역사의 축을 움직인 대사건으로 만들고, 그에 경탄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영 ‘없었을 법한’ 일들을 사실로 만드는 것일 터이고, 실지로 연개소문이 치우천황을 입에 담는 걸 보고 입에서 축구공 바람 빠지는 소리를 여러 번 냈습니다만, 가장 약이 오른 부분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기획 사극 가운데 주몽이다 연개소문이다 대조영이다 하는 제왕이나 제왕에 필적하는 인물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몽이건 연개소문이건 대조영이건 그들은 벨테브레 이상의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복원되어 브라운관에 비쳐질 겁니다.  개인적으로 주몽을 재미있게 보고 있고,  ‘금와 황제’에서는 조금 황당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귀족들이 가뭄 들면 왕을 죽이기도 했다는 부여에서... 쩝) 그럴듯한 설정과 긴장감에 주먹을 부르쥘 때가 많지요.  창조력과 상상력이 많이도 부족한 저로서는 그런 능력들이 조금 더 아래로 임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완벽한 영웅보다는 결점은 많으나 그 결점을 극복하려는 영웅이 모습을, 그리고 영웅보다는 벨테브레처럼 역사의 귀퉁이에 반짝했다가 스러져 간 인물들과 그들이 살았던 사회의 일면을 들춰 내는 그런 사극이 보고 싶고, 작가의 기발한 발상과 반전에 무릎을 치면서 브라운관에 빠져들고 싶은 바람이랄까요.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olumn_sanh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8

2006/08/16 (17:15:54)    IP Address : 211.41.199.116

Notice  =축= 산하(김형민) 님의 <썸데이서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시만 2003/12/21 1573
Notice  들러주시는 이들께 - 약간의 안내 시만 2003/07/24 1357
Notice  산하 님에 대한 하종강 님의 소개("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에서) 시만 2003/07/24 1548
287  화장실의 비극 산하 2006/10/28 1147
286    [re] 화장실의 비극 호수저편 2007/06/26 814
285  성길이 보아라 산하 2006/10/25 1066
284  "콩나물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산하 2006/10/25 1065
283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산하 2006/10/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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