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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산하
제 목 가화만사성? 가족만사성
(2006. 9. 11)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라고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습니다. 상황과 경우에 따라 약간씩의 편차가 보이긴 해도 '가족'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석가모니는 아들 이름을 '사슬'을 뜻하는 라훌라라고 지었다지만 대개 사람들은 그 사슬들을 온몸에 기쁘게 얽어매고 세상을 씩씩거리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요.

한국 특산의 '우리 식구 제일주의'에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지만, 또 '가족주의'의 폐단에도 고개 끄덕이는 부분 많으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정의 개념이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등 소수적 형태의 가족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선다는 것 절실히 인정하기는 하지만, 제게 가족이라는 단어는 그래도 항상 달콤한 어감으로 휩싸여 있었습니다.  <특명 아빠의 도전> 같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진정 화목한 가정이란 어떤 것이고, 얼마만한 힘을 가졌는가를 목격해 왔으니 그럴 밖에요.  헌데 제게 지난 열 달은 그 달콤함은 점차 달콤쌈싸름으로,급기야 쓰디씀으로 화학적 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월드컵 대 토고전을 몇 시간 앞두고 저는 충청도 산골로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한 정신병원, 그리고 거기에 입원해 있는 누군가를 만나 보기 위해서였지요.   그는 서울 한 동네에서 30년 동안 연탄도 배달하고 콩나물도 팔고 하면서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약간의 정신지체가 있었지만 일상 생할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고, 중년에 들어서야 인연을 만나 연상의 여인과 살림을 꾸민 차였지요.

제보자들 (그 동네 사람들 수십 명)에 따르면 이 '콩나물 아저씨'의 형제 가운데 한 명이 집을 사는데 콩나물 아저씨에게 전세금을 빼 도와 달라고 했고, 이를 완강히 거부하자 엄마와 두 아들이 작당을 해서 이 아저씨를 정신병원에 처넣었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동네에서 싸움 한 번 해 본 적 없고,그저 기운차게 콩나물만 팔고 다녔다는 사람이 ‘정신병자’가 되어 어느 날 동생이 몰고 온 택시에 태워져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이죠.

의사를 만나 진단이 어떻게 나왔냐고 물으니 정신분열이랍니다.  대체 그 근거가 뭐냐고 물으니 병원에 왔을 때 극도의 흥분 상태였고, 주위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상황이라 판다냈다고 하더군요.   멀쩡한 사람을 병원에 데리고 오면 공자님이라도 선불 맞은 멧돼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반문하니 의사는 “그 판단은 제가 합니다.  그리고 가족이 위험하다면 위험한 겁니다.”라고 잘라 말하더군요.  어머니에게 칼도 들이댔고 형한테도 어떻게 했다는 겁니다. 그 ‘증거’라고 비디오 테이프를 병원에 내놓았는데 그 증거물 안에도 문제의 환자(?)가 위험하다고 볼만한 정황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족이 제일 잘 알지 누가 알겠습니까?”

입원 며칠 뒤 콩나물 아저씨의 형이 콩나물 아저씨가 한 푼 두 푼 돈 생길 때마다 저금을 했던 새마을 금고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콩나물 아저씨의 돈 출금을 시도했지만 콩나물 아저씨의 사정을 익히 아는 직원은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고 우기며 출금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콩나물 아저씨가 입원한 지역 새마을 금고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보호자가 본인을 데리고 와서 돈을 달라고 하는데 내 줄 수 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가족인데 어떡합니까 내 줘야지.”

콩나물 아저씨의 동거녀는 인권위원회부터 파출소까지 관련 기관은 모두 찾아다녔지만 뾰족한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가족의 일원을 두고 행한 일에 제 3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든 행정적으로든 그 가족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그는 고사하고 최소한 콩나물 아저씨를 대면이라도 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는 사실 (가족의 동의 없이는 면회가 불가능함)을 절감했을 때 저는 초여름의 햇살 아래에서도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황당할 정도로 강력한 가족의 권리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 권리가 그릇되게 행사될 가능성과 혐의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였죠.

권리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무도 문제가 됩니다.  우리가 흔히 방임이라고 부르는 아동학대나 노인학대, 장애인학대의 한 형태에 접근할 때 저는 종종 머리를 쥐어뜯을 때가 있지요.   물론 애는 왜 싸질러 낳았냐?고 호통과 함께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얘기를 시작했으면 하는 무책임한 인간들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나름대로의 노력은 기울였으되 생활고나 그 밖의 이유로 감당이 어렵게 되어 결국은 자포자기 상태에 이른 방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때가 바로 제 머리카락이 고생을 하는 타이밍이죠.

이혼한 뒤 남매를 데리고 사는 엄마는 젊은 남자와 새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그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살고 애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쥐들과 함께 먹고 잠잡니다.  엄마는 3일에 한 번 정도 들러서 청소하고 애들을 봐 주지만 아이들은 거의 방치된 상황이라고 해 봅시다.  이쯤 되면 저는 아이들의 방임된 상황을 낱낱이 찍은 다음 그 상황을 엄마의 코 앞에 들이밀고 당신 아동 방임하고 있는 것은 인정하겠느냐며 따지고 들 겁니다.

그 엄마가 새벽부터밤까지 일을 하고 있고, 새 남편 눈치 보느라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었노라 하는 변명은 아마도 곁가지에 난 새싹 이상의 가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양해해 주기엔 대개 방치된 아이들이나 약자들의 상태가 눈에 찔리게 심각할 때가 많거든요.

물론 부모에게, 가족에게 1차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정말 대책없는 가족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나 많은 권리가 주어지는 것 이상으로, 가족 개개인에게 지나치게 무겁게 그 책임이 부과된다는 겁니다.   그 방임의 지배적 원인은 결코 개인의 도덕성 문제는 아닌데 말입니다.

  ‘사회’가 책임을 지는 부분은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정도로 구렁이 담을 넘어가면서,  가족의 일원이자 동시에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은 누군가 가족으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이가 발견되었을 때 그 앞에서 너무도 쉽게 정의의 하이에나로 돌변하여 물어뜯거나 “저러면 못쓰지.....”를 연발하며 혀를 차는 이웃집 공자가 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가끔 ‘가화만사성’만 멋있게 해서체로 쓰고 아이들에게 읽히면 금상첨화겠지요.

언젠가 박재동 화백이 그렸던 만화 중에 그런 게 있습니다.  일 나가는 부모가 문을 잠근 방 안에서 촛불로 인한 화재가 발생, 세 아이가 죽어나갔던 사건을 묘사한 한 컷짜리였는데,  자물쇠 채워진 지하방,  새까맣게 타 죽은 아이들에게 부모가 “먹고 살려고 그랬는데.... 아이고 얘들아”라고 울부짖는 옆에서 넓은 얼굴 유복한 체구의 남자가 그 아내에게 “애들은 부모가 길러야지..... ”라고 점잖은 훈수를 두는 만화였지요.   아마 그 남자는 “어떻게 애들 셋을 방에 두고 문 잠그고 나갈 생각을 할까?”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문 잠그고 나갈 생각을 하게 만든 사회에게도 일정 부분의, 아니 어쩌면 과반 이상의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은 결국 우리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받아 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겠지요.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에 저는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습니다.  되레 이 ‘家和萬事成’이 시나브로 ‘家族萬事成’으로 둔갑해 있는 착각에 종종 식은땀을 흘리곤 합니다.  가족에게 주어지는 권리의 남용을 막고, 가족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사회의 책무라고 할 때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로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 식은땀에 냉기가 흐르고 말입니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olumn_sanh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02

2006/09/12 (09:25:12)    IP Address : 202.150.188.114

Notice  =축= 산하(김형민) 님의 <썸데이서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시만 2003/12/21 1573
Notice  들러주시는 이들께 - 약간의 안내 시만 2003/07/24 1356
Notice  산하 님에 대한 하종강 님의 소개("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에서) 시만 2003/07/24 1548
287  화장실의 비극 산하 2006/10/28 1147
286    [re] 화장실의 비극 호수저편 2007/06/26 814
285  성길이 보아라 산하 2006/10/25 1066
284  "콩나물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산하 2006/10/25 1065
283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산하 2006/10/14 1146
282  서희의 편지 산하 2006/09/27 883
281  괴물 산하 2006/09/21 858
 가화만사성? 가족만사성 산하 2006/09/12 854
279  플란더스의 개 산하 2006/09/0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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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블루시걸과 여왕벌 산하 2006/06/10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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