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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산하
제 목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2006. 10. 14)





“방송만 아니면 평생을 두고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들만 골라 만나고 다니는” 요즘, 저는 특이한 병에 걸린 사람들을 취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의 이름은 도박 중독.  손을 잘라 놨더니 기계 손가락으로 섰다를 하고 있더라는 둥, 마작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종업원과 주인이 마작을 하다가 가게의 주인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둥 듣기만 해도 맘에 소름이 돋는 도박 중독에 관한 소문들 한 번쯤은 들어 보셨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도박 중독을 본인의 인격적 문제로 접근합니다.  의지가 약하지 못해 도박을 끊지 못하는 것이고, 유혹을 참지 못해 화투장을 쥐건 고래 잡으러 바다에 빠지곤 한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런데 의사는 단호하게 이야기하더군요.  “그것은 병이다.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인 질병이다.”는 것이죠.   도박중독 환자에게 “왜 그걸 못 고치니?”라고 추궁하는 건 심하게 말하면 폐렴 걸린 사람한테 “네 의지가 있으면 돼”라고 윽박지르는 일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깁니다.

제가 만난 20대 후반의 청년은 고등학교 때 도박에 빠져 근 10년간 집안 재산 3억을 날렸습니다.  돈 한 푼 제 손으로 벌어 본 적이 없는 주제에 아버지에게 “돈 2백만원만 주세요.”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더군요.  “부모가 자식에게 그거 못 도와주냐?”면서 적반하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돈만 생기면 스크린 경마장으로 직행이었지요.  원래는 한 2주쯤 지켜보면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이 친구는 1주일만에 상황 종료가 됐습니다.  아니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친구는 그야말로 폭탄 그 자체였던 것이죠.

어느 날 미행을 해 봤더니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만납니다.  어깨를 두드리면서 뭔가를 알아 봐 주겠노라 아들에게 얘기하던 사람의 정체는 사채업자.  아들은 엄마와 아버지의 주민등록 등본과 막도장을 들고 다니면서 부모를 연대 채무자로 한 사채를 빌리고 있었습니다.   사채업자들은 그 아들이 땡전 한 푼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부모를 볼모로 돈을 받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부모에게 전화 한 통화 없이 아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정히 부모가 돈을 못 내겠으면 부모가 아들을 고발한 뒤에 그 뒤에 우리랑 법적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 그 연유를 묻는 우리에게 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돈 못 갚겠으면 부모가 아들을 고발하라는 것이고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모 뒤에서 봉투 봉투 열렸네를 합창하겠다는 얘기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볼모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볼모였습니다 .  마지막으로 빚 정리를 한 것이 8월 20일, 아들은 보름 사이에 1천만원의 사채를 빌렸고 그 전부를 도박장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돈 빌릴 곳도 없어진” 아들은 좀 큰 돈을 빌리기 위해 또 다른 사채업자들에게 접근했고 우리는 그 현장에서 아들을 덮쳤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도박중독 클리닉에 강제입원을 시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된 겁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랴 싶었는데 정말이지 거침이 없더군요.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니 도박중독자에게 설마란 없답니다. 애 돌반지건 자식 등록금이건 마누라의 곗돈이건 신체포기각서를 동반한 사채건, 돈이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맹스런 소방대원이 된다는 것이죠.


도박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도박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겁니다.  여자를 만나고, 대학에 합격하고, 축구 경기에서 한국팀이 이기고 하는 모든 기쁨을 뭉뚱그려도 도박장의 불빛 아래 펼쳐지는 스릴과 ‘쪼으기’의 맛에 미치지 못하며,  ‘ 일괄적으로 내 인생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한 방이 존재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신앙이었습니다.  그 게임이 자신이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은 그 도박의 승리자가 되리라 굳게 믿고 있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은 소름이 돋도록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그 아들의 성격 가운데 특이하게 두드러졌던 모습은 모든 책임을 외부로 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지방에 내려가서 취직하고 살겠다고 해서 돈 100만원을 요구하기에 어머니가 일단 내려가서 답사라도 하라고 일단 50만원을 줬습니다.  아들은 그날 하행선을 타기는 고사하고, 두어 시간 만에 그 돈을 도박장에 고스란히 봉헌해 버린 다음, 엄마에게 되레 큰소리를 쳤습니다.

  “엄마가 100만원 줬으면 내가 안 그랬어. 돈 100만원 만들어 보려고 했단 말이야.  50만원이 그렇게 아까워?”  

그뿐이 아닙니다. 그때 아빠가 돈을 갚아 줬더라면, 고등학교 때 그 자식들을 안 만났더라면, 자기를 엄마가 조금만 더 믿어 줬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였지요.  “본인 책임은 없다는 거예요?”를 물었더니 “제 책임도 있죠 물론.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도대체 이 녀석의 도박 습관은 어이하여 이리도 강건히 뿌리내리게 된 것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그 해답은 어머니가 내놓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지나친 관대함과 그를 이용한 아들의 돈 따내기 작전의 결과라는 것이지요. “이것만 갚아 주면 대학 가겠다.”거나 “이것만 해 주면 스파르타식 기숙 학원에 들어가겠다.”거나 “요것만 막아 주면 군대 입대하겠다.”는 식으로 아버지에게 도박(?)을 걸었고, 아버지는 철석같이 다짐을 받은 다음 돈을 내밀었지만 결국 그 돈은 아이를 변화시키기는커녕, 더욱더 파괴적인 도박중독자로 전락시키는 마약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들은 엄마랑 마지막으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했고 저희는 혹시나 반성이라도 하려나 하여 엄마 앞에 데리고 가 봤습니다.  그때 아들은 이러더군요.  “엄마 나 치료 열심히 받을 테니까, 나오면 100만원 줘.”   이미 도박은 그의 생활 방식이었고 생활의 전부였으며 생활의 원동력이었던 겁니다.    
  
북한이 핵실험이 발표된 시각은 도박 중독 아들 편을 밤새 편집한 뒤 집에 돌아와서 곯아 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황당한 소식에 화들짝 일어나 TV를 지켜보면서 저는 거대한 도박판을 차고앉은 통 큰 도박 중독자의 패 돌리기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설마 북한이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핵실험을 하랴 하던 소박한 희망이 비풍초보다 못한 똥잎으로 변한 채  뭇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고 있었지요.  스스로에게도 극약인 핵을 얻었노라 “축하해 달라”고 우기던 북한 외교관의 모습에 사채를 빌린 뒤 좋아라 도박장으로 달려가던 아들의 뒷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은 전날의 편집본에 너무 몰두했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거 한 방이면 미국놈들도 우리를 무시 못할 것이고, 강성대국은 영원할 것이라는 그들의 자부심에는 “인생은 한 방이야~”를 부르짖는 숱한 도박중독자들의 증상이 실려 있는 듯 했고 말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전혀 인식하지 않는 도박 중독자들의 주요 증상도 북한 정권의 얼굴에 열꽃으로 피었습니다.   문제는 미제의 고립 정책일 뿐, 그 고립에서 벗어나고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이나 먹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그것이 왜 실패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그들은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만 명이 굶어 죽어도 그것은 미제의 책동일 뿐 김정일 정권의 오류는 지적되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스스로의 시스템을 개혁하고 반추하는 일은 미제에 대한 굴복일 뿐이며, 지금의 이 체제를 ‘결사옹위’하기 위하여 결국은 핵이라는 최악의 도박패를 던진 셈이지요.   돈 1억원을 준다면 강도라도 사양하지 않겠다던 도박 중독 아들과 체제 수호를 위해서라면 핵이라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북한 정권이 정말로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위적인 핵이다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반문은 딱 하나였습니다.  만약에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고 북한이 그 핵을 터뜨린다면, 거기에도 자위나 불가피라는 어색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핵실험에 성공한 순간 북한은 그 핵을 사용할 가능성을 창조한 것입니다. 자위적인 핵 사용? 불가피한 핵 사용?  그럴 리 없다고 애써 부인해 보아도 이미 북한은 도박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 방으로 인생을 역전시켜 보겠다는 포부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부모가 피눈물을 흘리건 말건, 집안이 거덜이 나고 쪽박을 차던 말던 이 판만 따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수 있으리라 믿던 아들처럼, 핵 사태 이후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체제 보장만 된다면 만사오케이이며, 그를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불사하리라 다짐하는 듯한 북한 정권을 보면서 저는 아들이 있던 도박장을 덮치던 날의 심정으로 돌아가 가슴을 치게 됩니다.  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대체 이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아들 녀석이 돈을 빌릴 때 땡전 한푼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을 알고도 부모라는 약한 고리를 간파하고 돈을 대 줬던 사채업자들도 무지막지하게 나쁜 놈들입니다.   그리고 사방팔방에 오락실 허가해 줬던 정부도 도박중독자들을 위한 구덩이를 수천 개 파 놓은 셈입니다. 한없이 관대하기만 했던 아버지도 결국 아들의 도박중독을 키워 놨습니다.

그 모든 원인들이 제거되거나 조절하거나 근절시켜야 해결책이 나올 것이고, 그 원인에 대해 논하는 것을 빼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과정 없이 개인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질병에 도덕적인 처방”을 내리는 결과 이상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핵 폐기를 요구하는 이상으로 도박판의 주인이자 하우스의 사장인 미국에게 평화적 해결을 촉구해야 하는 이유 역시 동일하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극한상황에 스스로 내몬 도박중독자 자신의 책임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도박 중독의 치유는 자신의 잘못을 아프게 인정하고 낭비한 생활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는 것으로 그 첫발을 디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 도박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야 합니다.  로또도 사면 재발이고, 고스톱판이 벌어지는 상가집과 돌잔치집도 금물입니다.

통은 크지만 그만큼 써야 할 피바가지도 막대한, 그래서 민폐를 끼치기 딱 좋은 도박패를 던지고 나선 북한 정권의 통찰과  반성을 기대해 봅니다.  핵으로 그들의 체제를 돌보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의미하며 무섭고 무상한 일인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핵무기를 통한 군사 안보는 결국 한반도에 거주하는 7000만 민중의 삶을 볼모로 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와 압력에 대항한 자위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열어놓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치군사적 대립국면은 한반도 전체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며, 필경 평양 지도부 역시 파괴적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

    민주노동당 산하 진보정치 연구소의 북핵 관련 글 중에서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olumn_sanh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05

2006/10/14 (10:58:16)    IP Address : 211.41.205.105

Notice  =축= 산하(김형민) 님의 <썸데이서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시만 2003/12/21 1573
Notice  들러주시는 이들께 - 약간의 안내 시만 2003/07/24 1357
Notice  산하 님에 대한 하종강 님의 소개("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에서) 시만 2003/07/24 1548
287  화장실의 비극 산하 2006/10/28 1147
286    [re] 화장실의 비극 호수저편 2007/06/26 814
285  성길이 보아라 산하 2006/10/25 1066
284  "콩나물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산하 2006/10/25 1065
 도박중독자에 관한 보고서 산하 2006/10/14 1146
282  서희의 편지 산하 2006/09/27 883
281  괴물 산하 2006/09/21 858
280  가화만사성? 가족만사성 산하 2006/09/12 855
279  플란더스의 개 산하 2006/09/03 1004
278  견권과 인권 산하 2006/08/30 805
277  5분 지각에 200대 산하 2006/08/18 848
276  내가 감독이라면..... 산하 2006/08/16 828
275  핌과 구에라임 산하 2006/07/21 874
274  고향을 알려드립니다 산하 2006/07/05 866
273  찬차가 산하 2006/06/30 806
272  아이에게 가르치는 6.25 산하 2006/06/27 817
271  4년 전 포르투갈전 산하 2006/06/13 791
270  블루시걸과 여왕벌 산하 2006/06/10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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