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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하승우]배반의 거버넌스, 변화는 가능한가?(기전문화예술)(동호회/인권평화연대의 안식처)
배반의 거버넌스, 변화는 가능한가?




하승우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이 유행이다. 작은 지역의 로컬 거버넌스에서 전 세계 차원의 글로벌 거버넌스까지, 거버넌스라는 마법의 주문이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다. 이 주문을 해석하는 방식은 제각각인데, 협치, 공치, 국정관리, 협력적 통치 등의 번역어가 그 예이다. 이렇게 그 상을 뚜렷하게 잡지 못한 상황에서 각자 자기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대로, 새로운 정부운영방식, 정치주체들의 협력방식, 시장의 자율적인 관리체계,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조정능력 등으로 거버넌스를 정의해왔다. 번역어를 통일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합의에 이르지도 못한 개념이 현실에서 지나치다 느껴질 만큼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뭘까? 거버넌스라는 주문 속에 우리 현실의 문제점을 풀어나갈 뭔가 특별한 비법이라도 숨어 있는 걸까?

38년의 일제 식민지 시기와 긴 군사독재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은 권력자나 관료의 손만을 거쳤고 대중은 언제나 그 결정을 충실히 따라야 했다. 국방이나 외교와 같은 큰 사안만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밀접한 문제까지도 언제나 국가권력이 그 방향을 결정했다. 아직도 친절한 국가가 가족계획캠페인을 벌이며 국민들의 ‘밤생활’까지 관리하고, 공익광고캠페인으로 대중의 ‘바른생활’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정부와 국민의 쌍방향 소통은 간혹 인터넷 해우소에서나 가능한 기대일 뿐, 실제 생활에서는 여전히 국가의 ‘계몽’과 ‘지도’가 활기치고 있다.

거버넌스는 이런 관계를 변화시킨다고 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국민들을 통치(government)했다면, 이제는 정부가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국민과 협력해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거버넌스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러니 얼핏 보기에 거버넌스는 한국사회의 일방적인 정책결정구조를 바꿀 좋은 방안처럼 보인다.

그런데 협력은 말처럼 쉽지 않다. 협력은 그런 협력을 가능하게 할 조건들을 요구한다. 평등한 참여와 충분한 토론,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 실질적인 결정권한, 결정에 대한 책임성 등이 그런 조건들이다. 이런 조건들을 마련하지 않고 무조건 협력을 주장하는 것은 일방적인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권력의 술책일 수 있다. 강자와 약자의 조건 없는 협력이 사실은 약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듯이.

따라서 원론적이거나 당위적인 입장에서 거버넌스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건 현실의 불평등과 차별을 은폐하거나 그 심각성을 무시할 수 있다. 제 아무리 양의 껍질을 뒤집어 쓴 들 늑대는 늑대일 뿐인데.




왜 거버넌스인가?




거버넌스라는 말은 왜 등장했을까? 이 말은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와 지방화, 복지국가의 위기라는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에서 등장했다. 민주화는 국가나 시장의 독주를 막고 시민과 시민사회가 자기 목소리를 내며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했고,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화는 국가와 시민사회가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물질적인 조건을 마련했다. 그리고 세계화는 각 국가가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인 생태계 파괴나 기후변화, 이주노동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려면 새로운 논의구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켰다. 이와 함께 지방화는 국가가 다루기엔 너무 미세한 문제들, 가령 마을 어느 곳에 공원을 만들고 어떤 사람이 얼마만큼의 복지혜택을 필요로 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을 지방정부가 다루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인식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국가는 큰 문제를 해결하기엔 작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큰 존재가 되어버렸다.

특히 복지국가의 위기는 이런 변화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복지국가의 위기는 세 가지 단면을 가지고 있다. 복지국가의 재정위기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그 위기의 원인들이다. 한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듯했던 서유럽의 복지국가들은 자본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등의 원인으로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래서 점차 복지정책을 집행할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유럽의 안정된 정당체계는 역설적으로 잦은 부패와 정치적 무관심, 새로운 사회변화전략에 대한 무관심 등에 시달렸다. 더구나 국가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세밀한 일상까지 간섭하고 통제해서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해쳤다(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J. Habermas는 이런 현상을 ‘생활세계의 식민화’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위기는 국가와 시민사회 모두의 능력을 약화시켰다.

거버넌스는 이런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대안으로 출현했다. 과거처럼 국가가 문제해결의 중심에 서지 않고 자신의 정보와 권한을 안과 밖으로 확장시킨다면, 국가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미시적, 거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았다. 거버넌스는 국가와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공통의 과제를 해결한다는 목적을 가졌다. 그리고 UN이나 IMF, 세계은행같은 국제기구들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며 거버넌스의 확립을 중요한 전략의제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이런 세계사적 흐름과 맞물려 있고, 특히 참여정부의 출범 이후 거버넌스는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참여정부는 동북아허브국가를 주장하며 세계화와 지역통합 등과 같은 거시적인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를 분권형 국가로 전환시켜 지방자치제를 발전시키고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복지나 도시계획 등 과거에 중앙정부가 전담했던 많은 권한들이 지방정부로 이양되었고, 주민투표제도, 주민소환제도, 참여예산제도처럼 시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들도 제정되었다. 거버넌스는 한국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배반의 거버넌스




그러나 거버넌스가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거버넌스라는 말이 주문처럼 쓰이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는 가장 핵심적인 결정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물론 중요한 정책결정에 전문가나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밝히지만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은 국가에게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거버넌스란 과거의 공청회나 설명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한미 FTA 체결 과정이나 제주도 해군기지 이전에서 드러나듯이, 외교나 국방같은 분야에서 국가는 자신의 독점권을 한 치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참여정부는 분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정권한도 이전하지 않고 있다(얼마 전 재정경제부가 밝힌 2008년 국세 세입안에 따르면, 전체 세입안에서 지방세 비율은 약 21%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거버넌스는 민주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구호라기보다 공허한 수사로, 그리고 국가의 일방적인 정책집행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분권이 시민사회의 참여와 협력의 강화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는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이중 구조가 아니라 국가, 시장, 시민사회라는 삼각 구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의 분권이나 역할변화는 시민사회의 강화가 아니라 시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의 ‘탈규제’와 ‘민영화’, ‘위탁관리’만이 국가의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은 그런 시각을 잘 보여준다(이렇게 보면 과거부터 최소국가를 강력하게 외쳐온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거버넌스의 문제의식을 가졌던 셈이다). 이처럼 시장이 국가를 대신할 경우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이나 빈민,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을 보호하는 제도들은 파괴되고 적자생존의 냉혹한 생존경쟁이 현실을 지배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IMF 위기와 사회적 양극화를 겪으며 점점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할 장치들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에 반해 포스코나 삼성같은 대기업들이 자리잡은 지방에서는 그 기업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고,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자본의 힘은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막강해지고 있다. 결국 거버넌스는 그 목적과 달리 시민사회를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고 시장의 힘만 강화시키는 배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초기의 낙관적인 기대와 달리 거버넌스는 국가의 정책결정을 정당화하거나 중요한 사회적 결정과 공공재를 시장논리에 내맡기는 도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시민사회의 능동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책임을 나눈다는 애초의 목적을 배반하고 있다.




과정 없는 거버넌스




이런 비판을 받자 거버넌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신(new)거버넌스, 굿(good)거버넌스, 시민사회 중심 거버넌스를 얘기하며 거버넌스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차별화 속에서도 거버넌스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는 사회정의나 평등, 소외의 극복이 아니라 효율성과 그 효과이다. 그러다보니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민주적인 과정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고 주로 그 결과의 성공여부에 따라 거버넌스를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자문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거버넌스를 확립해서 지역의 공공갈등을 모범적으로 해결했다고 평가하는 울산시 북구의 음식물자원화시설이나 경기도 시화호 간척지개발계획(지속위 홈페이지 참조)은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런 사례에서 거버넌스는 사안을 계획하는 단계에서가 아니라 그 사안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갈등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안되었고, 그렇기에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거버넌스를 주장하면서도 일반 주민이나 평범한 시민들을 중요한 논의대상이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한국의 국가는 특정 주민들만을 중요한 논의대상으로 여겨 왔다. 소위 ‘지역토호’라 불리는 사람들이 그런 대상이다. 새마을운동협의회나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의 관변단체들은 지역사회에서 거버넌스를 추진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고, 상공회의소나 지방언론, 개발업자 등도 핵심적인 인물들이다. 이처럼 거버넌스라는 구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이들에게만 정보가 제공된다. 이들은 정부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거나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개발정책을 지지한다.

거버넌스는 관련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정책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주민이나 시민을 그 과정에서 배제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처럼 관존민비(官尊民卑)의식이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곳에서 정부는 주민이나 시민의 능력을 불신하고, 그러다보니 주민이나 시민은 정부의 의도를 믿지 않고 적극적으로 결정과정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부는 당위적으로 참여를 강조할 게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조건들(예를 들어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자료집을 나눠주거나 자주 찾아가서 만나고 얘기할 기회를 가지는 등)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슷한 맥락에서 거버넌스는 이해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는데, 이 전문가는 누구일까? 가령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전문가는 누구인가? 주민들은 지역에 관해 추상적이고 보편적 지식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적어도 지역의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전문가의 전문적인 지식만큼 소중하다. 더구나 현재 그 지역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주 전문적인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안이나 정책(예를 들면 방폐장이나 댐)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주민과 논의한 후에 결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의 개발은 아주 전문적일 수 있으나 그 기술의 사회적 적용은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나 요리사라 하더라도 좋은 집이나 음식을 만들려면 그 집에 살거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욕구를 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렇게 보면 거버넌스는 단순히 참여를 보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욕구를 충분히 듣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문가의 역할도 주민들을 지도하거나 계몽하는 게 아니라 주민의 욕구를 읽고 그것을 전문적인 계획으로 해석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거버넌스는 민주적인 참여를 보장하기는커녕 기술관료와 전문가들이 결탁한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를 정당화하는 틀이 되기 쉽다.

그리고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정보공개이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같이 협력해서 결정을 내리려면 그 사안과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협력하려면 신뢰가 필요하고 신뢰하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토론해야 하고, 그리고 충분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토론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가 많아야 한다.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제공한 채 같이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건 거버넌스를 형식적인 틀로 만드는 주된 원인이다. 또한 그런 정보를 검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도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적인 과정의 의미는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고 충분히 토론할 시간과 공간이 보장될 때에만 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실질적인 부분을 꼼꼼히 챙기는 사례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거버넌스의 민주화!




최근에는 이러한 경향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면서 ‘거버넌스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지표는 사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했는가가 아니라 관련된 당사자들의 실질적인 참여와 권한을 얼마나 보장하고 사회적인 불평등을 얼마나 고쳤는가이다. 이런 주장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사회의 힘이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시민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두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하나는 2006년부터 한국에도 공식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참여예산제의 최초 모델인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Porto Alegre)시의 참여예산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형 마을만들기의 모범으로 소개되고 있는 전북 진안군의 사례이다. 브라질 사례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생겨난 풀뿌리(grassroots)의 힘이 거버넌스의 내실을 다진 경우이고, 진안군은 관이 주민의 잠재된 힘을 끌어내어 변화의 거버넌스를 확립한 사례이다.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시의 참여예산제도는 전 세계 200개 이상의 도시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모범적인 지역혁신전략이다. 1988년 포르투알레그리시의 지방선거에서 노동자당(PT)의 두트라(O. Dutra)가 당선되면서 참여예산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당이 이 제도를 준비했던 건 아니다. 1970년대부터 도시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도시권’(urban rights)을 요구해온 많은 주민운동단체들이 지역예산편성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했고, 시장이 이를 전격 수용함으로써 참여예산제는 시작되었다(참여는 혜택이 아니라 권리이다!).

주민들이 직접 지역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참여예산제는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사용할 권리를 돌려줬다. 그리고 이런 권리는 개인적인 판단보다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총회와 참여예산평의회를 통해 실현되었다. 16개의 지역별 총회와 교통, 복지, 도시계획 등의 주제를 다루는 6개의 주제별 총회는 누구나 참여해서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그 결과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꾸준히 늘어났다. 처음에는 참여자가 700여명에 불과했고 참여예산제를 통해 결정되는 예산의 비율도 2%에 불과했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 시예산의 25% 이상을 결정했고 참여자가 2만 명에 이르렀다.

참여예산제도는 처음부터 분명한 목적을 가졌다. 참여예산제도는 마치 혜택을 주듯이 시민참여를 권유하지 않고 권력의 원래 주인인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주고 그들을 능동적인 시민으로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졌다. 특히 기존의 대의정치가 배제해온 사람들, 즉 여성이나 가난한 사람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했다. 이를 위해 시당국은 지역별 총회나 주제별 총회가 결정한 예산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승인했다. 그리고 시당국은 예산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고 예산을 결정하는 분명한 기준을 만들어서 지역정치인이나 지역토호들이 참여예산제를 왜곡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참여예산제를 통해 지역정치의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시당국과 힘을 모아 브라질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빈곤과 난개발을 바로잡으며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E. O. Wright)와 펑(A. Fung)은 『민주주의 뿌리내리기(Deepening Democracy)』에서 포르투알레그리시의 참여예산제도야 말로 주민들의 실제 역량을 강화시키고 참여를 보장해서 진정한 거버넌스를 확립했다고 평가한다. 라이트와 펑이 대안적인 거버넌스의 모델로 주장하는 역량강화참여거버넌스(Empowered Parcitipatory Governance)는 구체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상향식 참여와 참여하는 사람들의 활발한 토의(deliberation)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이 거버넌스는 유연한 통치전략이 아니라 국가를 민주적으로 다시 조직하는 방안이다.

참여예산제가 도시의 사례라면, 전북 진안군은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도 그런 모델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2001년도에 시작된 진안군의 마을만들기는 정책개발팀과 공무원들의 협력으로 그 기초를 다졌다. 이들은 일본과 달리 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한국의 마을만들기 방식을 버리고 주민들이 스스로 사업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즉 어떤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고 사업을 공모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마을회의를 열어 자기 마을을 발전시킬 계획을 스스로 짜도록 했다(마을회의를 거치지 않은 계획은 내용과 무관하게 마을로 반려했다).

진안의 으뜸마을 가꾸기 사업은 그 과정에서 교육의 역할을 가장 강조했고, 주민들이 마을사업을 실제로 기획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이를 위해 11개 마을 별로 순회교육을 진행(마을별 3회 이상)했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사람들을 리더로 선정해서 리더십 교육을 진행했다. 이 리더십 교육은 마을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 마을주민들을 대하는 방법, 반대하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법, 집중된 권한을 나눠서 역할을 분명하는 법 등을 다뤄서 마을만들기 사업의 취지와 의미를 발전시키게 했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들도 책상물림을 벗어나 직접 마을을 찾아가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또한 진안군은 인구가 빠지면서 쇠락하는 한국 농촌의 현실을 고려해 회의개최와 행정적인 업무처리, 인터넷 정보 등을 다룰 ‘마을간사’를 선발해서 각 마을에 배치했다.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 중에서 공개모집을 거쳐 선발된 마을간사들은 농촌의 붕괴를 막고 생태주의를 실현하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의 참여를 통한 거버넌스!




참여예산제와 으뜸마을 가꾸기의 공통점은 참여와 협력을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것이 가능한 실제조건을 먼저 마련했다는 점이다. 즉 참여의 폭을 확대할 뿐 아니라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 참여는 권력이나 자본, 명성을 가진 특정 개인들의 참여로 제한될 때 민주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의 문턱을 낮출 뿐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도록 이들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 누구에게나 사생활과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첫 발을 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 첫 발을 뗀 사람들이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참여예산제는 담당공무원과 자원봉사자를 배치해서 처음 참여한 사람들도 예산을 이해하고 총회에서 말할 수 있게 했고 탁아소와 놀이방을 운영해서 여성들의 참여를 도왔다. 그리고 진안군의 정책개발팀은 일 년에 백회 이상 마을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업진행을 도왔다.

그리고 참여예산제와 으뜸마을 가꾸기는 참여의 장을 전문가나 관의 일방적인 교육장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들이 자신의 지식을 나누며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게 했는데, 그런 과정은 일종의 대중지성을 구성하고 있다. 각자의 지성이 모여 마을공동체의 지성이 될 때 그 지성의 힘은 배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 도움의 공간이 바로 지역총회와 마을회의이다. 특히 이런 토의공간은 개인이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관점에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서 민주적인 시민을 기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제도가 운영되는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었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관이 일방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 규칙을 따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성공은 보장될 수 없다. 오히려 제도는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통해 확보된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모든 사람들의 참여와 토의를 보장할 때 제도는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될 때에만 시민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스스로 책임지려 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민주적인 절차는 민주적인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기른다.

가장 중요한 점으로 참여예산제와 으뜸마을 가꾸기는 주민들의 손에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넘겨줬다. 아무리 자주 논의의 장을 마련하더라도 그 장이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구색만 맞추고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민주적인 거버넌스는 확립될 수 없다. 결정권한을 과감하게 권력의 원래 주인인 주민과 시민의 손으로 넘겨줄 때에만 그들의 능동성이 살아나고 제도의 활력은 유지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설령 잘못된 결정으로 피해를 본다 하더라도 그들 스스로가 책임질 것이다.




거버넌스, 변화는 가능한가?




드잘레이(Y. Dezalay)와 가스(B. G. Garth)는 『궁정전투의 세계화』에서 거버넌스의 전 세계적인 유통이 미국의 지식담론을 재생산하는 과정이자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가령 세계은행이 주장하는 굿 거버넌스는 세계적인 빈곤퇴치에 실패한 세계은행이 조건부 원조를 빌미삼아 만든 ‘새로운 통제의 도구’이다. 드잘레이와 가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구에서 유행하는 지식담론들을 비판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더구나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낸다는 얘기처럼, 그나마 괜찮게 보이는 제도들도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원래의 취지를 잃고 괴상한 형태를 띠게 된다. 직접민주주의의 한 방식이라 불리던 주민투표제도도 중앙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앞서 모범이라 얘기했던 참여예산제도도 알맹이 없는 공허한 제도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변질이 생길까? 그것은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그 내부의 동력을 보지 않고 껍데기만 달랑 베껴오기 때문이다. 원래 국가란 것이 창의성이 부족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오히려 그런 국가의 무능력과 상상력 부족을 비판해야 할 시민사회의 역량도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리고 시장의 경쟁논리가 시민사회의 미약한 역량마저도 질식시키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폭주하는 시장을 제어하고 국가주의적인 발상을 포기하지 않는 국가를 민주화(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지나간 단계가 아니다)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국가나 시장 내부에서 그런 힘이 자생적으로 생성될 수 없다는 점은 이제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힘은 시민사회의 역량강화를 통해 생길 수밖에 없고, 시민사회의 역량은 대중이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장할 때에만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성장은 한국사회가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그 어떤 수식어를 붙이든 거버넌스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대중의 역량이 강화될 때에나 가능하고, 그럴 때에만 거버넌스는 민주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미리 속단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거버넌스에 관한 이런저런 담론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하는 수많은 실천들이다. 지금 수준에서 천천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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