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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구조주의
제 목 테러 후 5년, 그리고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 후 5년, 그리고 <월드트레이드센터>

"이제 세상은 이전 같지 않을 거야…."

지난 5년간 미국인들은 이 말을 습관처럼 되뇌며 살았다. 그들의 말대로 9·11테러는 비극적으로 가족을 잃은 미국인들의 절망을 넘어, 미국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전국 곳곳에 성조기가 걸리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공공시설의 경비를 서며, 공항 검색대에서 신발을 벗고 허리띠를 풀어야 하는 등의 외적인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테러는 미국인들의 의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직장면접에서 결혼유무나 종교, 심지어 나이를 묻는 것까지도 금기시하던 미국사회가 이제 개인이 도서관에서 빌려본 도서목록까지 뒤지고 나선 것이다. 이유 없이 차를 세워 음주측정 하겠다고 하면 혼비백산할 미국인들이 이제는 공항에서 "왜 더 철저히 뒤지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까다로운 절차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유머감각까지 빼앗아간 9·11테러

테러는 '프라이버시'나 '자유'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미국인들이 낙천성을 잃었다는 점일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도 (심지어 낯선 동물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미국인들 특유의 낙천성은 타인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런 미국인들이 낯선 이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는 근대성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신뢰'를 꼽고 있다. 현대는 타인에 대한 신뢰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남이 지어준 집이 밤 사이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 없이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으며, 남이 모는 버스가 무사히 다리를 건널 것이라는 믿음 없이 어떻게 오후 저녁 약속을 잡을 수 있겠는가. 하다 못해 식사 후 자판기에서 나오는 '정체불명의 액체'가 식용 가능하다는 전제가 없으면 편안하게 목 뒤로 넘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성'의 상징이 된 뉴욕은 도리어 반근대적 불신의 진원지가 됨으로써 미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제 축제에서 터지는 풍선소리에서도 테러의 공포를 느끼며 살게 된 것이다. 워싱턴 DC 레이건 공항의 검색대에는 "농담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이제 테러는 미국인들의 유머감각까지 빼앗아간 것이다.

'더 이상 과거 같지 않은' 것이 미국사회지만, 이전보다 더 '과거'로 회귀한 모습들도 눈에 띈다. 정체불명의 공포와 더불어 소수인종과 문화권에 대한 편견도 자유로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멀쩡한 미국인이 '아랍계'라는 이유로 (혹은 아랍계로 보인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 9명 이상의 선량한 시민이 같은 이유로 '보복살인'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 잔인한 기억과의 대면

민항기가 무역센터 건물을 무참히 들이받는 그 끔찍한 이미지는 미국인들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그 장면은 사건 발생 후 TV에서 며칠 사이 수백 번 되풀이 되었으며, 그것을 한동안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미국인들은 정신을 차린 후에는 그 이미지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소방대원들과 경찰들의 영웅적인 이미지가 대신 들어서기 시작했다.

테러가 발생한지 이제 꼭 5년이 되었다. 그리고 테러를 주제로 한 영화가 한 두 편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제 미국인들은 그 잔인한 기억과 다시 조우할 준비가 된 것일까. 그러나 어떤 내용을 다루든 이 사건과 연관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미리 읽은 것도 영화화하기 쉽지 않은 터에 직접 경험한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더구나 그 경험이 어떤 영화보다 극적인 것이었다면.

<유나이티드 93>이나 <월드트레이드센터> 두 편의 영화가 모두 '개인경험적 접근'을 취한 이유도 이런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사건 자체를 쟁점화하는 것은 너무 민감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관객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다루는 영화는 애초부터 '어떻게 우리가 이 비극과 맞서 싸워왔는가'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개봉한 올리버 스톤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대해 많은 미국 평론가들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영화 자체가 실망스럽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감독이 이 사건으로부터 전혀 정치적인 메시지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대중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반응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건을 영화화하기

이 영화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낸 (다시 말하면 감독에 대한 높은 기대수준을 드러낸) 평론가들은 <플래툰>과 <제이에프케이 JFK>를 언급하지만, 두 사건 모두 이미 30년 이상 지난 사건이며. 이미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정리'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사안을 다룬' '문제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9.11테러는 '정리'는 고사하고, 아직 '우리가 사악한 무리로부터 당했다'는 피해자의 담론 이외의 다른 견해는 전혀 허용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테러에 대한 '비주류적' 평가는 영화라는 대중적 담론은 물론, 학술적 차원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9·11테러를 미국의 대아랍정책과 연결지어 분석하면서 '미국은 테러를 스스로 자초했다'고 주장한 교수는 교수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게다가 테러사건은 이미 올리버 스톤이라는 '정치적' 감독이 정치화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이미 정치화되어 있는 상태다.

따라서 스톤 감독이 취한 전략은 이 사건을 완전히 탈정치화 함으로써 도리어 정치성을 얻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는 비행기가 건물을 들이받는 장면은 물론, 건물 전체가 붕괴되는 장면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도대체 어떤 사건인지 영문도 알지 못하는 채 붕괴되는 건물 속에 파묻힌다. 이후 영화는 철저하게 두 주인공의 눈을 통해서 이야기된다.

<월드트레이드센터>는 존 매클러린과 윌 지메노라는 두 경찰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뉴욕의 경찰관인 두 사람은 다른 경찰관들과 함께 붕괴 직전의 월드트레이드센터 안에 사람들을 구조하러 들어갔다 10미터 이상의 콘크리트 더미 속에 매몰된다. 그리고 이들은 암흑 속에서 오랜 시간의 고통을 이겨낸 후 기적적으로 구조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선전하는 "실화"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9·11테러가 실화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우리가 이제까지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예고편에서도 일관되게 말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악을 보았던 그 날, 두 사내는 다른 것을 보았다."

같은 날, 다른 것을 본 사람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콘크리트에 깔린 두 사내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 카메라가 서서히 올라가 건물의 잔해를 넘어 대기권까지 올라가는 장면이다. 이때 인공위성은 카메라를 지나면서 전 세계로 뉴욕 테러사건을 타전하고 있다.

다음 장면에서는 각국의 아나운서들이 안타깝고 슬픈 표정으로 이 비극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 애도의 행렬에 참여한 나라 가운데는 중동의 국가들도 보인다. 여기서 관객들은 감독의 의도를 읽게 된다. 이 비극은 반성과 용서, 그리고 화해의 기회가 될 수 있었으나 그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톤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날 우리는 전 세계의 애도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가 우리와 함께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더 많은 테러의 위험과 법적자유의 유린, 그리고 더 큰 고통이 있을 뿐입니다."

매클러린(니콜라스 케이지 분)이 함께 잔해에 파묻힌 부하를 찾으며 어디 있느냐고 묻자, 지메노(마이클 페냐 분)가 대답한다. "여기, 지옥에 있습니다." 테러의 직접 피해자가 '악' 이외의 다른 것을 보고 있을 때,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던 대통령은 얼마 후 '악의 축'과의 전쟁을 선언한다.

5년이 지난 9월 11일,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애도의 뜻을 표한다. 그날 가족을 잃었지만,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며 이라크 전쟁반대 서명에 나선 나의 친구 제니퍼. 그녀에게 애도와 더불어 존경의 인사를 보낸다.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forum_cultur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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