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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구조주의
제 목 재즈의 '신분변화'와 다이애나 크롤
재즈의 '신분변화'과 다이애나 크롤

5년 전, 다이애나 크롤은 파리의 올랭피아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갈채를 받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을 세어가며 협연자들과 조심스레 "여기서 당신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I Love Being Here With You)"로 공연을 시작한 그녀는 자신이 재즈 역사의 한 시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재즈를 좋아한다'는 말을 수치스러운 고백으로 여기는 이들은 없다. 오히려 재즈야말로 고전 음악 이상의 '고상한' 취향을 반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재즈'라는 말이 본래 '성행위' 혹은 '정액'을 의미하는 속어였다는 데서 알 수 있듯, 과거에 재즈는 무지와 천함 그리고 퇴폐와 타락을 의미하는 '반문화적' 행위의 상징이었다.

재즈, '타락'에서 '고상함'으로

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시카고>는 재즈가 차지하고 있던 문화적 위상을 잘 말해준다. 정부를 살해한 락시는 자신의 죄를 다른 대상에게 전가하고는 무죄판결을 받는다. 바로 재즈다. 락시의 변호사는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본디 심성은 착했지만, 재즈와 술에 빠져서 그만…."

재즈는 금주시대의 밀주만큼이나 사악한 것으로 여겨졌던 셈이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러 60년대 중반까지도 재즈는 '멀쩡한' 공연장에서 연주되기에는 부적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스스로 재즈 작곡자이기도 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1964년에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공연에서 재즈를 한 곡 들려 준 후 이렇게 말한다.

"음악홀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그렇지요? 이런 소리는 이웃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거나 재즈 페스티벌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요. 그러나 이제 이런 소리를 미국의 공연장에서 들을 기회가 조금씩 늘어날 것입니다."

번스타인의 예언은 정확했다. 그러나 그 조차 유럽의 '멀쩡한' 공연장에서, 그것도 심포니의 반주에 맞추어 그 '퇴폐의 소음'을 연주하는 여자가수를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흑인 사병들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남녀를 타락시키는 부도덕한 음악'이라는 비난을 들으며 '금지' 처분까지 받았던 음악이 바로 재즈이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금발의 여성이 음악홀의 무대 위에서 관현악단과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재즈 음악의 '탈형식성'은 엄격한 규칙을 생명으로 하는 기존 음악의 관습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재즈 음악의 생명인 '유연성'과 '애드립'은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해 악보를 읽지 못하던 연주자들이 만들어 낸 전통이었다. 게다가 재즈는 남녀가 부둥켜 안고 춤을 추는 음란한 음악으로 비난 받았다.

아프리카 민속음악에서 미국 남부 노예의 애환을 달래주는 비탄의 가락으로, 다시 동부와 중서부의 대도시로, 그리고 다시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각 나라 마다 나름의 전통을 지니게 된 재즈의 역사는 문화의 발전과 확산, 그리고 문화적 가치관의 변화를 잘 드러내 준다.

'고급문화'에서 '대중문화(부르주아 미학의 입장에서는 '저급문화')로, 혹은 '대중문화'에서 '고급문화'로 하강하거나 상승한 예는 많지만, 재즈만큼 바닥에서 하늘로 치솟은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또한 이는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위계적 구분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과거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가수 크롤

다이애나 크롤은 미디어 이미지의 축복을 누려 온 현대적인 재즈 가수다. 그녀의 성공이 탁월한 피아노 연주솜씨와 매혹적인 목소리에 있음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모델 못지 않은(실제로 그녀는 롤렉스 시계의 모델이기도 하다) 매력적 외모가 인기를 얻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다이애나 크롤의 전기 <다이애나 크롤: 사랑의 언어>를 쓴 제이미 라이드조차 음악세계를 다루기보다는 "다이애나 크롤의 이는 피아노 건반처럼 희고 고르다"는 식의 '비음악적 요소'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크롤의 현대적인 면은 이미지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지난 음반 <다른 방의 소녀(The Girl In The Other Room)>에서 크롤은 현재의 남편 엘비스 코스텔로와 함께 재즈와 팝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선보였다. 이 음반을 채운 열 두 곡 가운데 무려 여섯 곡을 크롤 자신이 쓴 것이다.

그녀는 늘 노래를 쓰고 싶었지만, 가사를 쓰는 데 자신이 없어 곡을 내놓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음악 스타일뿐 아니라 작사까지 도운 코스텔로의 협력은 연애와 결혼이 크롤이 새로운 음악세계를 개척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렇듯 새로운 시도를 진행하는 가운데 크롤은 자신이 물려받은 음악적 유산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자주 "해의 동쪽과 달의 서쪽(East of the Sun and West of the Moon)"을 콘서트 첫 곡으로 씀으로써 페기 리(Peggy Lee)에게 경의를 표하거나, 1996년 음반 <모두 당신을 위해(All For You)>를 냇 킹 콜에게 헌정한 것은 과거로부터 진 빚을 고백하려는 노력의 일부다.

지난 2004년에 나온 <다른 방의 소녀>가 보여준 크롤의 새로운 시도에 팬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그 전까지 여덟 장의 음반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크롤의 감각적인 스윙풍의 재즈에 환호하던 일부 팬들은 '건조해진' 그녀의 음악에 실망을 표했지만, 많은 재즈 애호가들과 평론가들은 새로운 실험에 박수를 보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음반 <이 순간부터 계속(From This Moment On)>에 대해서 사람들은 앞의 음반과는 정 반대의 평가를 내놓을 것이다.

다시 가벼움으로 돌아오다

최근 발매된 크롤의 10번째 음반 <이 순간부터 계속>은 선곡이나 스타일 면에서 2001년의 <사랑의 눈길(The Look of Love)>를 연상시킨다.

콜 포터, 조지 거쉰, 앨 더빈 등의 잘 알려진 노래들을 위주로 구성한 새 음반은 크롤의 과거 음반이나 '전통적인' 스윙 재즈 팬들에게 사랑 받을 것이 틀림 없지만, <다른 방의 소녀>와 같은 새로움이 없다는 점에서 '자신의 스타일에 안주하는 안일한 선택을 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동시에 받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새 음반에 수록된 12곡 모두가 사랑의 기쁨과 슬픔에 관련된 노래들이다.

"얼마나 무심했던가(How Insensitive)," "슬픔에 잠긴 소녀(Little Girl In Blue)" 그리고 "깨어진 꿈의 거리(The Boulevard of Broken Dreams)"가 사랑의 슬픔을 담은 노래라면, "밤이나 낮이나(Day In Day Out),"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요(It Could Happen To You)," "멋진 날 아닌가요(Isn’t This A Lovely Day)" 등의 사랑의 환희를 담고 있다.

사랑의 고백을 차갑게 거절하던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는 "얼마나 무심했던가"는 크롤 특유의 거칠고 감각적인 목소리와 절묘한 피아노 반주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반면에 "밤이나 낮이나"는 사랑을 시작한 사람의 설렘이 크롤의 밝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12곡 가운데 8곡이 '업비트'의 낙천적 노래인 탓에 음반 전체의 분위기는 밝고 가볍다.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녀가 지금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미상에 이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새긴 크롤은 가수로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뿐만 아니라, 2년 전에 결혼한 43살의 크롤은 다음 달 태어날 첫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최근 나온 음반의 '경박함'을 탓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이애나 크롤의 음악은 재즈에 관심을 가져보려는 사람에게 좋은 입구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기쁨에 기대 잠시나마 기분을 되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잔인한 가을이지만, 이 우울한 시대에도 사랑은 어김없이 찾아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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