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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구조주의
제 목 마이클 무어, '의료괴담'을 말하다
마이클 무어, '의료괴담'을 말하다
무어의 새 영화 <시코>, 무슨 내용을 담았나


미국 청년 아담(Adam). 그는 사고를 당해 무릎이 한 뼘 가까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병원이 아닌 집으로 간다. 아담은 소파 위에 다리를 올려 넣고 반짇고리에서 꺼낸 검은 실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한다. 고통스럽게 한 바늘씩 찌르는 그의 다리 맡에는 피 묻은 휴지와 소독약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는 보험이 없는 5000만 명의 미국인 가운데 하나다.

기타 연주가 취미인 릭(Rick). 그는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다 왼쪽 손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갔다. 그 역시 많은 이웃들처럼 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완전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구하기 어렵거니와, 개인적으로 가족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한 해 1천만원을 쉽게 넘어서는 고액의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실로 실려간 그에게 병원은 '협상안'을 내 놓는다.

완전히 잘린 중지를 붙이는 데만 6만불(6000만원)이지만, 중지 접합수술을 받으면 약지는 '할인가'를 적용해 1만2천불(1200만원)에 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고민하던 릭은 약지 하나만 1만2천불에 붙여달라고 부탁한다. '값비싼' 나머지 손가락은 수거함에 담겨 오레곤의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다.

보험이 없어 매년 죽어가는 2만 명의 환자들

미국에서는 한 해에 2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단지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죽어간다. 무보험자들은 하루 하루를 살얼음판 위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병 나지 않게 해 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심화되는 미국사회의 양극화와 보험가격 상승으로 인해 무보험자의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이클 무어는 <시코>의 서두에서, 이 영화가 보험 없이 죽어가는 무보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멀쩡한 보험을 가진 2억 5천만 명의 미국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말이 끝난 후 카메라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과 보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료비용으로 인해 파산에 이르는 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은 잘 나가던 기술자였고, 부인은 신문사 편집국장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뇌졸중에 걸렸고, 얼마 후 아내마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들은 직장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었지만, 보험 가입자도 내야 하는 '공동부담액(copayment)'을 장기간 지불하고 난 후 결국 가산을 탕진했고, 집까지 팔고 이사를 가는 신세가 된다. 이 부부는 미국의 의료제도가 보험을 가진 중산층마저 파멸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설마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날까'하며 믿지 않았다고 한다. '괴담'이 현실화된 셈이다. 여자는 울음을 터뜨린다.

미국에서 의료문제는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린 환자들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시코>는 80세가 되어서도 쉴 수 없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을 해야만 무료로 제공되는 약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하는 거지"라고 말하며 쓴 웃음을 짓는다. 죽지 않기 위해서 약을 먹어야 하지만, 그 약을 구하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부인은 그나마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 노부인은 오랫동안 통증을 앓고 있지만 의사가 처방하는 '신약' 진통제는 고가여서 그들 형편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할머니는 "요즘은 아스피린도 안 먹고, 술 한 잔으로 해결해"라고 말하며 할아버지와 함께 쓸쓸히 웃는다.

'의료민영화'가 가져온 미국사회의 재앙

왜 이런 일이 일인당 국민소득 4만불이 넘는 '부자나라'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영화 <시코>는 그 이유를 찾아 나선다. 이를 위해 마이클 무어는 닉슨 대통령의 비밀 녹화록에서 '전국민의료보험은 빨갱이 체제'라고 비난하던 미국의사협회의 홍보영상, 그리고 보건부에서 제약회사 이사로 자리를 옮긴 정부관리의 연봉까지 추적한다. 그는 결론을 내린다.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이 끔찍한 재앙은 국민보건이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결과라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 져야 할 정부는 보험사와 민간 의료기관과 결탁해 그들의 이윤을 지켜주기 바쁘다. 물론 정부관리들에게는 막대한 정치후원금 및 은퇴 이후의 고액 연봉직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전국민 의무보험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정부와 기업은 이렇게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유럽과 캐나다 같은 '사회주의 의료체제'를 가진 나라를 가 보라. 국민들은 세금에 찌들어 살고, 형편 없는 보수 때문에 아무도 의사를 안 하려고 한다. 그때문에 의료진의 질과 의료서비스의 수준은 떨어지고, 응급실에는 몇 시간씩 줄지어 기다리는 환자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 주장에 대해 마이클 무어는 특유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의 병원을 방문하고 의사들과 만나 미국 정치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의료재앙'의 실체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곳에서는 감기 환자나 다리 골절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들이 모두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하루 종일 기다리느냐고 묻자, '10~15분 정도 기다린다'고 대답한다. 의료진들은 "이런 치료에 얼마 정도를 청구하느냐?"는 마이클 무어의 질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병원에는 아예 '카운터'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하며 병원을 돌아다니던 무어는 '계산대(Cashier)'라는 간판이 적힌 곳을 찾는다. "그럼 그렇지…" 그러나 그곳은 환자들이 돈을 내는 곳이 아니라, 병원 측에서 환자들에게 교통비를 주는 곳이었다. 무어는 말문이 막힌 표정이다.

그렇다면 환자들의 천국은 의사들의 지옥일까? 그러나 의사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 고급 차에, 훌륭한 집을 갖추고 윤택하게 살고 있었다. 다만 환자들의 전화를 받고 새벽까지 분주하게 환자의 집을 방문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유럽이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의료체제를 가질 수 있던 이유를 묻자, 미국과 프랑스 두 사회를 잘 아는 여성이 대답한다.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한다. 정부는 국민들의 시위를 두려워 하고, 국민들의 항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국민들이 정부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행동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시위에 나서길 두려워한다. 프랑스에서는 국민들이 늘 하는 일인데."

가장 심각한 문제를 다룬, 가장 논란이 적은 영화

<시코>는 지난 주 23일 밤 일부 도시에서 부분 개봉을 시작한 이래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이달 29일 전국 확대개봉이 시작되면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과 <화씨9/11>에 이어 또 다시 미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미국의 가장 심각한 이슈를 다룬 <시코>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 가운데 가장 '논란이 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진보든 보수든 미국의 의료제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의 스카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화당 소속이든 민주당 소속이든, 정치지도자들이 <시코>가 제시하는 문제점에 대해 토를 달 일은 없어 보인다. 미국의 의료체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코>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가운데 가장 논란이 적고 가장 호소력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재미있고 깔끔하게 편집된 영화이기도 하다."

해결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시코>가 다룬 미국사회의 의료위기가 객관적 현실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어에 따르면 미국 의료위기의 궁극적 원인은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공공부문을 지속적으로 감소시켜 온 미국의 시스템이 자체가 낳은 것이다.

미국의 의료문제가 사회양극화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구조적 문제'와 연관짓는 무어의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영화가 말하듯,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서민들의 기초적인 삶의 조건마저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무어는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미국사회를 향해, 모든 것을 '시장'이라는 이윤추구의 장에 맡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병원 응급실을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응급실에 환자를 눕혀놓고 현금지급기를 찾아야 하는 한국의 의료사정도 딱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시코>에 나타난 미국의 모습에 견주면 한국이 이 정도의 의료체계나마 갖춘 데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이 '행복감'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한국이 캐나다, 프랑스, 영국은 물론 쿠바보다도 못한 의료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쿠바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1/5수준이면서 우리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새 다큐멘터리에서 변함없이 유머감각을 자랑하지만, 관객들은 웃음만큼 큰 고민을 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발전'으로, 그리고 미국체제를 따라가는 것을 '선진화'라고 굳게 믿는 한국사회가 주목해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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