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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구조주의
제 목 무관심을 파는 다방, 스타벅스
무관심을 파는 다방, 스타벅스
현대인의 삶, 그 속에서 커피숍 공간이 갖는 의미


스타벅스가 누리는 인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내놓았다. '훌륭한 커피 맛과 서비스'라는 교과서적 답변에서, 경영자 개인의 뛰어난 비전과 마케팅 능력때문 이라는 처세적 영웅담, 그리고 서구 문화에 환장한 철부지들의 허영이라는 힐난까지.

나름의 근거를 갖춘 설명도 있지만, 대부분의 답변들이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빗겨가고 있다. 바로 '사회'다. '스타벅스가 어떻게 인기를 얻었나'라는 질문은 '사회는 왜 하필 이 시기에 스타벅스 식의 다방문화를 받아들였냐'는 물음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만 보아도 커피체인의 선두주자는 스타벅스가 아니었다. 이미 1950년대에 커피 체인을 시작한 던킨도너츠가 있고, 스타벅스에 앞서 전국의 주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에스프레소 음료를  선보인 '에스프레소 로얄(Espresso Royale)'도 있었다.

이들이 스타벅스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내에서 꾸준하게 매장 수를 늘려왔다. 이는 미국사회가 스타벅스 이전부터 커피체인과 에스프레소 음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사람들이 스타벅스에 대해 보인 특별한 반응을 생각할 때, 이 커피숍 체인은 분명 남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일까?

'괴상한 이름의 음료를 파는 이국적 커피숍'

스타벅스의 커피 맛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나, 결코 뛰어나지는 않다. 스타벅스는 '좋은' 커피보다는 '다른' 커피를 판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에스프레스 음료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의 커피마저 오래 볶은 원두를 써서 미국인들이 전에 보지 못한 진한 커피를 내 놓았다. 담아주는 용기마저 기 존의 '작은 컵,' '중간 컵,' '큰 컵' 대신 '톨(Tall),' '그란데(Grande),' '벤티(Venti)'라는 (미국인들의 표현을 빌면) '기괴한'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어로 '20'을 뜻하는 '벤티'는 '20온스 들이 컵'이라는 의미라 치더라도, '크다'는 뜻의 영어 '톨'과 역시 '크다'는 의미의 이탈리어어 '그란데'를 컵 구분 용으로 쓴 것은 실제로 기괴한 결정이었다. 스타벅스의 한 직원에게 물었다. "왜 작은 컵에 '큰'라는 이름을 붙여 팔까요?" 직원은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작은 커피를 사면서 '큰' 것을 받으면 기분은 좋아지지 않겠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정체 모를 '유럽적 분위기' 연출이라는 제 역할은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출신의 한 대학원생(30)과 미네아폴리스 출신의 작곡가(34)에게 스타벅스가 주는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그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카페모카,' '라테,' '캬랴멜 마끼아또,' 등 외국어로 된 음료를 팔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려고 애쓰는 커피 체인."

"대낮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는, 분위기 괜찮은 바. 보통의 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술 대신 커피를 판다는 것."


미국인들에게 스타벅스는 아직까지도 묘한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장소다. 이런 '이국적' 느낌을 심어 주는 것은 생소한 음료 이름이나 앞치마 두른 '바리스타' 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4천원짜리 커피'라는 것은 '발상의 전환'에 가까운 충격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커피'란 간이식당에서 여종업원들이 계속 채워주는1불 50센트짜리, 또는 주유소에서 사서 차 안에서 마시는 2불짜리 (도넛 두 개를 포함해서) 미지근한 음료수였다.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과시소비' 및 '허영'의 상징으로 부각시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스타벅스 가격대의 커피는 한국사회에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스타벅스는 '정상가'의 두 배 세 배를 받으면서도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현상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포벅스(Fourbucks)'라는냉소('4달러'라는 뜻에서)를 거두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 해 4월 23일 미국 시비에스(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에서는 스타벅스 열기를 보도하면서 이렇게 서두를 열었다.

"어느 누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줄을 서서 4불이나 되는 커피를 살 거라 상상했겠는가? 도대체 어느 누가 우리들이 커피숍에 들어가서 태연히 '더블 샷에 시럽은 한 번만 담고, 저지방 우유로 거품을 내어 얹은 캬라멜 마끼아또 주세요'라는 주문을 하게 될 거라고 믿었을까? '마끼아또'라는 건 또 뭘까?"

미국에는 없던 '다방문화'

사실상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커피숍' 이라는 공간 자체가 생소했다. 커피는 식당이나 집에서 음식과 더불어 마시는 '기능성 음료'에 가까웠다. 유럽이나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찻집에서 친구들과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단순히 상품이나 마케팅의 성공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등장, 즉 '다방문화'의 확산을 의미한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은 1999년 2월 8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내에서 스타벅스는 가정과 직장 사이의 '제 3의 장소'로서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가정의 베란다를 확장했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하는 일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커피는 수백 년간 대화의 매개체였습니다."

스타벅스가 '제 3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는 슐츠의 분석은 타당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스타벅스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견해는 좀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물론 미국인들도 언어를 갖고 있기에, 커피숍에서든 어디에서든 말을 한다. 그러나 한국이나 유럽의 커피숍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미국 커피숍의 적막에 가까운 분위기에 놀라게 될 것이다.      

미국인들 다수는 혼자 커피숍에 와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신문을 뒤척이거나 책을 읽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을 들여다 본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매장에는 벽 구석 구석마다 전원 코드가 마련되어 있고, 유료로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 수의 귀에는 흰색 이어폰이 꽂혀있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대화의 매개체'를 컵에 담아 주더라도 사람들이 입을 열기 어려울 것이다.  

커피 대신 장소를 팔다

스타벅스의 다른 별명 가운데 하나는 '작가들의 천국(Writers’ paradise)'이다. 이 별칭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스타벅스가 새로운 노동환경의 혜택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지식노동의 종류와 양이 증가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노동의 장소가 일터 밖까지 확장되었으며, 경제활동의 영역이 확대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이동 또한 잦아졌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집과 일터가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며, 작가나 번역가처럼 아예 커피숍을 일터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직장 일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에게도 일할 장소를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가정이 없는 사람은 적막한 집이 싫어서, 가정이 있는 사람은 적막한 장소가 필요해서 이 곳을 찾았다. 어쩌면 스타벅스가 확장한 것은 가정의 베란다보다 사무실의 책상인지 모른다.  

이동이 잦은 현대사회에서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익숙한 분위기의 매장과,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예상 가능한' 맛을 제공하는 커피숍의 등장과 성공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커피 자체보다는 커피를 핑계로 쉬어갈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런 장소의 제공은 새로운 시도였기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가격을 지불했다. 한국에서 취객이 밤 늦게 찾는 8천 원짜리 사우나는 목욕치고는 비싸지만, 호텔치고는 싼 가격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오랜 다방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찻집이 유럽의 시민사회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본다. 커피숍이 단순히'수다'의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초월한 공적 주제를 논하는'공론장(Public Sphere)'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한국역사학자인 브루스 커밍스는 60년대 이후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한 다방이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측면에 주목한다.

오래 전부터 안락한 대화의 공간을 가지고 있던 데다가, 차를 가져다 주기까지 하는 찻집에 익숙한 한국인들, 특히 남성들에게 스타벅스는 좀 기묘한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스타벅스는 기존의 찻집에서 푹신한 쿠션을 딱딱한 나무의자로 바꾸고, 도자기 잔 대신 일회용 종이컵을 주면서 배달 대신'셀프서비스'를 표방하기 시작한,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커피숍이다. 거기에 가격은 호텔커피숍 수준으로 받는.

커피숍의 성적 의미와 '된장녀'

미국도 그랬지만, 한국에서도 커피는 '맛'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음료였다. 한국은 인스턴트 커피가 전체 커피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독특한 시장이다. 2003년까지 이 비율은 95퍼센트에 달했다. 인스턴트 커피는 적당히 달면 될 뿐, 그다지 까다로운 입맛을 요구하지 않는다.

위세 높던'원두커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소와 값을 막론하고 진한 보리차 수준의 묽은 커피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었던 것은 커피가 제공하던 만남의 기회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식 에스프레소 커피숍의 부상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공간 자체에서 커피 맛으로의 이동이고, 다른 하나는 남성적 공간에서 여성적 공간으로의 변화다. 한국에서 과거의 찻집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서비스를 받는 남성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남자'바리스타' 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우유 거품을 내는 커피숍의 등장은 공간의 성적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이미 강력한 경제력을 갖춘 구매집단으로 성장한 한국여성들은 고급 에스프레소 음료의 맛과 상징적 가치에 충분한 가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판기 커피를 비운 후 가래와 담뱃재를 터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터프가이'들로서는 '똑 같은 커피'에 4천원이라는 거금을 쓰는 행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스타벅스 커피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물론 사실이 아니다) 소문은 '된장녀'들을 공격하는 구실이 되었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스타벅스'는 이제 스타벅스 매장의 범주를 벗어난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스타벅스가 다른 커피숍들로부터 영감을 얻었 듯, 이제 스타벅스의 영향을 받은 커피숍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각 지역의 고객들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방식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와 의미를 판매하면서.    

무관심을 파는 커피숍

커피숍의 공간에 대한 작은 실험을 해 보았다. 스타벅스 몇 군데와 다른 체인 및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지역 커피숍을 번갈아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 3의 공간'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다. 어차피 커피숍에 상주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므로, 이 작업은 별도의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몇 주간 이 곳 저곳에서 시간을 보내 본 결과, 미국 커피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관심'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불친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점원은 최대한 친절하고 정중해야 한다. 하지만 돈을 받고 커피를 건넨 이후에는 그 고객과의 소통은 완전히 단절되어야 한다. 고객은 그 '친절한 무관심' 속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원하는 일을 하다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익명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점원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을만큼 넓거나 시선을 적당히 차단해 주는 공간구조다. 독서에 불편함은 없지만 적당히 얼굴을 가려주는 부분조명은 고객 사이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돈을 지불하고 산 무관심의 안락 속에서 제 할일들을 하다 소리 없이 하나 둘 일어섰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아는 한국의 커피숍은 스타벅스를 포함해 훨씬 더 밝고 개방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문객들은 이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끝없이 대화를 나눈다. 조용히 노트북 자판기를 두드리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앞에조차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친구가 앉아 있기 일쑤다. 한국과 미국의 커피숍은 분명히 다른 공간이다.

지난 여름, 한국의 한 커피숍을 석 달 동안 '일터'로 사용한 적이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자, 그 곳의 직원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커피와 케익 값을 대신 내 주었다. 미국의 커피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정으로 가득 찬 한국사회의 일면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래 머물기 편한 쪽은 미국 커피숍이지만,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곳은 언제나 한국 쪽인 까닭이.  

퍼 가실 분은 참고하세요. 이 글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forum_cultur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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